2월 28일은 교회의 전례력으로 재의 수요일이다. 이날로부터 성목요일 주님의 만찬 저녁 미사 전까지, 즉 4월 12일까지 바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회개와 기도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전세계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부활의 참된 기쁨과 환희에 이르기 위해서 나약한 인간인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보속의 행위를 하며 겸손하게 기도와 자선과 희생을 실천함으로써 구원의 시기를 기다리게 된다.
따라서 이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를 기리는 대림과 성찬에 버금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때이며 그런 만큼 우리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기도와 전례 생활에 충실해야 하며 사랑의 실천과 나눔에도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많은 신자들이 주님 성탄 대축일을 「범국가적」으로 들뜬 분위기 속에서 더 큰 축제로 잘못 이해하는 경향도 없지 않으나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부활 대축일을 향한 준비기간으로서의 사순 시기는 전례적으로나 신앙생활에 있어서나 성탄에 못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사순시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로마 8,17)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이 시기에 강조되는 고행과 단식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기보다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와 연결될 때 참된 의미를 갖는다.
즉 그리스도가 인류 구원이라는 위업을 이루기 위해서 수난과 죽음을 겪었듯이 그리스도인들 역시 각자의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할 때 그 영광에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순시기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집중적으로 묵상하고 이를 생활 속에 구현하는 시기이며 따라서 사순시기는 그저 주님의 고통과 죽음만을 슬퍼하는 시기가 아니라 참된 구원의 기쁜 소식인 부활의 영광에 비추어 고통과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자선 없는 단식은 무의미
사순시기에는 회개와 자선의 행위로서 단식을 실천한다. 단식은 기도를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 자선과 연계되지 않은 단식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가르쳐진다. 따라서 사순절은 당식 등 자기희생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과의 나눔, 사랑을 구체적으로 행하는 의미로서의 자선을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교회는 사순시기 때마다 전체 교회 차원에서 또는 본당이나 각 단체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의 모금운동을 펼치고 각 가정에서나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사순절 저금통을 마련해 40일 동안 희생한 것을 모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랑의 실천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사순시기의 또 하나 중요한 가르침은 회개이다. 훼손된 하느님과 이우소가의 사랑의 관계를 본래대로 회복하는 것이 바로 회개라고 할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올해 사순절 담화문에서 사순시기를 맞아 우리에게 전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회개의 초재를 강조했다. 교황은 이 담하에서 개인만 아니라 공동체와 국가 간에서도 회대와 용서만이 평하를 건설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당부하고 있다.
교황은 부당하게 모욕을 받고 공격을 당했다고 생각할 때에도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마태오 복음 5장의 말씀을 강조하면서 이를 실제로 행하라고 권고했다.
따라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순시기가 회개를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해줌으로써 참된 평화 건설에의 기초를 놓는 시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와 정신은 우리 매일의 일상 안에서 그대로 실천돼야 한다.
사순시기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실천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식하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내가 잘못한 것에 용서를 청하고 나에게 잘못한 이를 기꺼이 용서함으로써 참된 평화를 가정과 사회 안에서 건설할 때 사순절의 고통과 죽음은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지게 된다.
■ 사순시기의 유래와 전래
사순절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초대교회 이후로 교회 안에서 특별한 전례력 의미를 지니는 이 시기가 전통으로 서서히 자리잡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40일의 정화 기간
동방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금요일과 토요일의 엄격한 단식 이전에 덜 엄격한 단식을 하며 부활 대축일을 며칠 동안 준비하는 관행이 있었다. 니체아 공의회 역시 부활 이전 40일 동안의 준비 기간이 있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을 제외하면 6주간은 정확히 40일간이 된다. 40이란 숫자는 성서적으로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가지는 정화의 기간을 뜻하는 상징적 숫자이다. 즉 이스라엘의 40년 동안의 시나이 사막에서의 방랑, 모세와 엘리야의 40일 동안의 단식, 그리스도의 40일 동안의 단식 등이다.
처음부터 부활 축제 준비 기간으로서의 40일이 오늘날과 같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부활 축제는 본래 부활전야제, 즉 토요일 밤에 시작해서 일요일까지 거행됐다. 그런데 4세기부터 성삼일이 생겨났고 이후 성서상에서 성스러운 준비기간으로 증언하고 있는 40일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재의 수요일
사순 첫 주 이전의 수요일부터 단식이 시작됐으며 이로써 사순절의 시작이 재의 수요일이 되었다. 사순절을 시작하는 사순 제1주일 전 수요일에 재의 수요일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교회가 이 날 미사 중에 참회의 상징으로 재의 축성과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행하는 데서 생겨났다.
머리에 재를 얹는 행위는 참외와 슬픔을 나타내는 것으로 구약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초대교회에서도 이러한 관행은 자주 개인적으로 행해졌다. 이것이 10세기경에 로마로 들어왔고 11세기말경 공의회에서 재의 수요일에 모든 신자들이 머리에 재를 얹는 것으로 전례에 도입됐다.
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는 재의 수요일을 사순절 첫날로 선언했고 바오로 6세는 이날 전세계 교회가 단식과 금육을 지킬 것을 명했다.
단식과 금육
과거에는 연중 매 금요일과 사순절 토요일 그리고 재의 수요일에는 금육재를 지키고 사순절 동안에는 매일 단식재를 지켜야 하는 등 규정이 까다로웠다.
그러나 현 교회법에 따르면 대축일이 아닌 연중 모든 금요일과 사순절을 참회 고행의 시기로 규정(1250조)하고 있으며 대축일이 아닌 모든 금요일에는 금육제를 지키고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은 금육과 금식재를 함께 지켜야 한다(1251조). 금육재는 만 14세를 넘은 이는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며 금식재는 만18세부터 60세 시작(환갑날)까지 지켜야 한다(1251조). 이외에도 사목자와 부모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킬 의무가 없는 미성년자들 역시 참회 고행의 의미를 깨닫도록 보살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