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마르 10,33).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함께 길을 떠나자고 초대하신다. 그 길은 갈릴래아에서 출발해 주님께서 구원 사명을 완수하시게 될 장소에 이르는 길이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주님과 완전한 친교를 이루며,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 깊이 참여하기 알맞은 때인 사순 시기에 특별히 초대를 하신다. 이런 초대를 받은 우리는 이 사순 시기에 주님께서 섭리하시는 은혜로서, 우리 내부로 시선을 돌려 우리 안에 울리는 그 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이며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야한다.
2.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고도 주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방해받지 않으려고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어라』(루가 6,27)는 말씀을 흘려버리거나 무시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용서와 화해가 진정한 인간적 쇄신과 사회적 쇄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다 이는 대인 관계뿐 아니라 공동체와 국가간에도 마찬가지다.
3. 종교적 오해, 민족들 사이의 증오와 폭력, 파벌간 갈등 등에서 비롯디는 인류를 괴롭히는 수많은 비극적 갈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력감을 갖게 하고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평화에 대한 염원을 저버리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무관심해서는 안된다. 그런 까닭에 대희년에 교회와 교회의 자녀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소리 높이 하느님께 용서를 청했다. 회개하는 얼굴에서 악을 생각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신뢰할 때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끊임없이 그 길로 되돌아갈 수 있다.
4. 평화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용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4~45 참조)는 말씀을 잊지 말자. 자신의 마음을 돌려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길을 가려면 내적·회개를 경험해야 하며 예수님의 명령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시대에 용서는 진정한 사회 쇄신과 세계 평화 증진을 위해 그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는 다소 힘들지만 희망으로 가득한 방식이다.
5.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1고린 13, 5). 사순시기는 사랑을 실천하는 고귀한 형태인 용서라는 덕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성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주시는 용서로 우리는 사랑 안에 살아가게 되고 다른 이들을 형제로 여기게 된다. 참회와 화해의 이 사순 시기에 신자들은 진정한 사랑의 표지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이러한 마음의 태도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갈라 5,22참조), 어려움에 처함 사람들에게 새로운 마음으로 물질적 도움을 주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하는 마음은 관대한 마음이다. 이 거룩한 사순 시기에, 「베품」은 깊은 의미를 지닌다. 수많은 형제 자매들의 고통스러운 얼굴과 비참한 상황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가진 것의 일부만이라도 나누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말과 행동으로 친교와 연대의 증인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사순 시기에 주님께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기 바란다. 기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은 주님의 자비를 체험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즐거이 또 아낌없이 받아들이고 그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01년 1월 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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