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떼이야르는 당시 교회의 종말적 영성의 흐름에 육화(강생)적 영성을 보완함으로써 조화와 균형의 영성을 시사하였다.
종말적 영성은 종말 또는 주님의 재림을 잘 맞이하기 위하여 일상에서 준비하며 대기하는 삶이다. 이 영성은 인간의 본성이 원죄의 결과로 인해 하느님의 은총과 대립을 이루게 되었음을 전제로 하여 긴장 중에 현세적 삶에서 초탈하며 관상, 고행, 극기 등을 실천하도록 강조한다. 한편 육화적 영성은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로 구원되고 성화된 세계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려는 자세의 삶이다.
이 영성은 현세적 사물과 인간의 삶에 대한 긍정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자연이나 인간 본성 능력이 초자연적 질서에 의하여 간화되고 거양되어 은총의 힘과 조화있게 합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생활은 종말적 영성이나 육화적 영성 중의 택일이 아니며 양 측면의 알맞은 조화와 균형의 모습이다.
떼이야르는 당시 교회의 생활에 드리워진 짙은 종말적 및 수직적 영성의 흐름에 육화적 및 수평적 영성이 보완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가 강조한 영성은 현세 참여와 현세 초탈, 자아 발전과 자아 포기의 조화의 영성이다. 이러한 영성은 현세 도피가 아니라 적극적 활동을 통해서 초탈하고 현세 정복을 통해 하느님께 도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이다. 육화 영성의 보완에 대한 그의 적극적 강조는 균형있는 영성을 고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종말적 측면이 미흡하도록 약화시켰다고 평가된다.
2) 떼이야르는 신학자인 동시에 과학자로서 진화론을 신학에 도입하고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여 일원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세계관을 구성하였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현대 사상의 다양한 분야에 큰 공헌을 하였다. 무엇보다 종교와 과학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고 상화 관련중에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일때워 주었다. 실로 과학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우주를 탐구하고 자연 법칙을 발견하여 인류의 복지에 응용해야 하며 종교는 과학적 업적을 인정하고 또한 과학의 진로와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과학은 자연 현상의 일부분만을 탐구하기 때문에 우주 전체의 근원 문제나 인간 실존의 근본 문제에 대해선 답을 줄 수 없다.
그러한 문제는 종교의 영역에 속한다. 과학이 만일 자기 본연의 사명인 「행복한 세계 건설과 인류의 복지」에 전적으로 기여하지 않고 인류의 비극을 초래할 경우 종교는 과학의 횡포를 견제하고 그 본래의 사명으로 돌려놓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한다. 한편 종교는 과학의 직분과 능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과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 과학에 대한 경시나 무지는 결국 종교가 감당할 과학시대의 선교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3) 떼이야르는 낙관적 인간관 및 세계관을 제시하였다.
그의 인간학이나 영성이 이룩한 주요 공헌은 물질, 우주, 인간안에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 포함되어 있는 낙관적 의미와 희망을 발견하고 발전시켰다는 데 있다.
실존주의자들이 제기했던 바와 같이 생명과 죽음에 대한 비극적이고 부조리한 감정이 지배적이던 당시 전쟁 후의 상황에서 떼이야르의 인간적 낙관론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공기나 싱그러운 향수 같은 역할을 하며 참신한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사람들에게 인간 실존을 이해하도록 하고 그들로 하여금 의망을 가지고 살며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준 것이다.
4) 떼이야르는 20세기의 그리스도교 신학의 여러 영역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가장 큰 기여점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세상에서 전개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역할과 키워야 할 영성을 자신의 생활 안에서 조심스럽게 전개해 나간 것이다. 그의 저서들 안에서 전개된 그의 영성은 그리 체계적인 것이 못되지만 그가 자신의 영적 깨달음과 삶을 나누고자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의 저서들은 그의 삶과 그의 영성의 반추이다. 그는 일생동안 지구와 세상 안에서 절대자를 찾았고 그분의 감추어진 뜻과 섭리를 알아내고자 하였다. 하느님 추구와 지구에 대한 그의 사랑은 사제인 동시에 지질학자로서의 성소안에서 함께 발전되어 나갔다.
그는 실로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찾아내고자 하던 신비가였다. 그는 자신이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전망에 대해 다른 이들이 이해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열정적이었다.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밝혀내기 위해 활기차고 집요하게 노력한 선교사였으며 사도였다.
5) 떼이야르의 사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저서들은 그의 죽음(1955년) 후에 출판되었다. 그의 책들은 곧 수많은 문화권의 언어들로 번역되었고 읽혔으며 그의 사상은 헤아릴 수 없는 잡지, 논문집, 책 등에서 주석되고 평가되었다.
그의 사상과 영성의 가치가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확인된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회기 중 그의 사상은 공의회 교부들에게 소개되었고 또한 자주 언급되었다. 떼이야르의 사상으로부터 가장 크게 영향받은 공의회 문헌은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이다. 인간관과 그리스도론에 대한 사목 헌장의 가르침은 여러곳에서 떼이야르의 주장과 유사병행구들을 이루고 있음을 명백히 발견할 수 있다.
6) 떼이야르는 20세기 쇄신적 영성에 있어 선각자였다.
떼이야르는 선각자로서 논문과 글들을 통해 그는 꾸준히 새로운 길,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전진해 나갔다. 한편 선구적 사상 때문에 그는 일생 동안 장상들로부터 의혹과 오해를 받고 반대에 부닥치며 많은 제재와 불이익을 당했다. 그러한 것들이 그를 매우 마음 아프게 했고 고뇌하도록 했지만 그는 겸손되이 순명하면서 극복해 나갔고 고독한 선구자의 길을 걷는 데 항구했다.
그의 사상은 그가 살아있던 동안엔 이설적인 것처럼 위험시 되었고 교회로부터 그의 원고들은 출판 금지되었으나 사후 그의 저서와 사상은 그리스도교 안팎에서 선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현대 과학에서 지적, 윤리적 위기를 발견하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인류 멸망에 대한 공포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떼이야르가 자신의 과학적 진화론과 그리스도론에서 인류의 미래를 멀리까지 낙관적으로 예시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런 점으로 보아 그는 현대의 사상가와 신학자들 가운데 인류의 미래를 가장 장엄하고 희망차게 열어 보인 사상가 및 영성가라 할 수 있다.
7) 그의 인간관과 영성은 한편 아쉬운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신학 이론과 영성은 완벽하지 못하고 적지 않은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죄, 인간적 소외, 회심, 하느님의 자비의 필요성 등에 과한 주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의 창조론은 「무로부터의 창조」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절대 신앙을 약화시킬 위험성을 내포한다. 육화와 부활의 교의를 강조하다 보니 십자가와 구원의 교의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참된 행복」(마태 5, 3~12 참조)에 대한 것은 그의 저서들 안에서 미미하게 다뤄지고 있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 총괄자로서의 그리스도가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성서 말씀의 언급이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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