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배갑진 신부)는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기념기간」개막과 함께 매달 「이달의 순교자」를 선정해 신앙선조들의 삶과 신심을 기리는 일에 나선다. 본지는 신앙선조들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에 함께 하고자 이들의 행적과 삶을 소개하는 장을 마련한다.
「내포의 사도」. 충청도 예산의 여사울에서 태어난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일명 단원·1759~1801)은 권일신에게 감화돼 세례를 받고 충청도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입교시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살찌웠다. 그가 입교시킨 이들은 농부, 노동자 등 서민층이 많아 사대부의 교양적 지식욕구에서 비롯된 한국교회를 대중화·보편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승훈, 유항검, 최창현 등과 함께 가성직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1801년 2월 28일(음력) 참수당하기까지 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서양의 선진문물과 외교사절을 태운 양박(洋舶)을 청원하는 등 신앙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충청도지역에서 신분의 차별을 허물고 재물과 말씀을 나눔으로써 「사귐과 섬김의 나눔의 초대교회 공동체」를 이 땅에 구현했다.
김광옥은 관가에 체포되자 배교하라고 위협하는 관장 앞에서 대군대부(大君大父)이신 하느님을 배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황일광은 천민 출신으로 『나에게는 이 세상에 하나, 후세에 하나 이렇게 두 개의 천장이 있다』며 신앙을 꺾지 않았다. 또 이존창과 함께 복음을 전한 원(元)시장은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아낌없이 나눠줘 기근에서 구했다.
박취득은 곤장과 몽둥이로 1400대 이상 맞고 8일 동안 물 한방울 마시지 못하면서도 끈질기게 신앙을 고백했다. 이밖에도 충청도에서는 1801년의 신유박해때까지 이도기, 이국승, 김정득, 이보현, 인은민, 방 프란치스꼬, 윤 바오로, 한 토마스, 이종국, 정 베드로, 김귀동, 원 야고보, 문윤진 등 여러 순교자가 나왔다.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 3월의 순교자] 이존창과 충청도 순교자들
한국교회 대중화·보편화에 한몫
발행일2001-03-04 [제2239호,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