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봄기운이 겨울 바람에 실려 봄을 재촉하는 날 제42회 3·1문화상 예술상을 수상한 홍윤숙 시인(76·데레사)을 만났다.
『상을 받는다는 게 기쁜 일이긴 하지만 나 자신과 독자들, 사회에 대한 책임감 또한 크다』는 그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몰는데 이렇게 큰상을 받았다는 것이 송구스럽다』며 소감을 밝혔다.
47년 「문예신보」에 「가을」을 발표하며 등단해 「낙법놀이」「실낙원의 아침」「조선의 꽃」「마지막 공부」등 13권의 시집과 「하루 한순간을」「지상의 끝에서 돌아보는 지상」등 9권의 산문집을 펴내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쳐온 홍윤숙 시인은 문화예술 분야의 탁월한 <없음> 업적을 인정받아 3·1문화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타고난 감수성과 절제된 언어로 한국시단을 지켜온 지 50여 년.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매일의 삶 안에서 언제 찾아들지 모를 시심(詩心)을 향해 마음을 열어놓고 있다는 시인은 요즘 서울주보 「간장종지」에 묵상 시를 연재하고 있다.
『시를 쓰는 것이 오래도록 지니고 있는 배냇 버릇 같다』는 시인에게도 1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간장종지」가 『때로 큰 시련을 겪는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복음의 느낌을 시화한 묵상 시를 쓰며 처음으로 예수님 가장 가까이 서서 그분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는 그는 『예수께서 복음을 통해 일러주시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산다』고 덧붙인다. 홍시인은 그것이 주일미사나 간신히 참례하는 형편없는 신자인 자신이 교회에 바치는 최대한의 일이란다.
「간장종지」를 통해 나타나는 그의 신앙시는 여느 신앙시와는 다르다. 가장 순수하고 거룩한 말을 찾아내 쓰는 「찬미의 노래」가 아닌 투정부라고 따지며 그분께 좀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나약한 인간의 솔직한 고백이 담겨있다.
『문학의 가톨리시즘이란 멀리 깊은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살며 나를 이끌어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삶 속에 깊이 흐르고 있는 신앙의 세계가 시로 형상화된 때문인지.
『시「마지막 공부」를 쓸 때였어요. 「삶이란 끝없이 꾸는 꿈」이라고 쓰고는 더이상 시가 이어지지 않았는데 어느순간 「죽음은 비로소 쌔어나는 현실이다」라는 말이 생각이 나더군요. 제 시의 모든 결말은 결국 그 분이 맺어주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을 때쯤 최초의 전집을 낼 계획이라는 그지만 『아마 의식이 말갛게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시를 쓰고 싶을 것 같다』며 천직 시인의 모습을 보인다.
홍윤숙 시인은 간장종지의 글과 신앙고백시, 「마지막 공부」를 내며 남겨둔 20편의 시를 엮어 내년 봄쯤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들에게 『시는 그저 쏟아내는 게 아니라 바른 문학정신을 갖고 문학이 무엇인지부터 진지하게 추구하며 가슴에서 저며내는 듯한 각고 끝에 나오는 결실』이라고 전했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이 봄.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하느님의 귀중한 약속을 생각하게 된다는 시인은 사순절을 지내며 『십자가의 길을 좀 더 깊이 묵상하고 따라가면서 그 분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새겨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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