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채소장사에 나섰다. 다섯 남매를 키우기 위해서 늘 부지런히 움직였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목돈을 모을 방법은 딱히 없었다. 그저 아낄 뿐이었다. 해진 내의를 입고, 한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입에 넣기 위해서는 고기 한 점을 산 적이 없었다.
그렇게 평생을 모은 재산 9억 원, 동전 한 푼 남김없이 교회 내 사업과 청소년들의 교육에 쓰여지길 바랐다. 7월 26일과 28일 각각 선종한 홍용희(비오·향년 82세)·한재순(미카엘라·향년 83세)씨 부부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한재순씨는 지난해 12월 10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을 예방하고 전 재산을 기부했다. 홍용희씨는 투병 중이라 동행하지 못했다. 기부 사실은 당일 동행한 둘째 딸 외에 외부인들은 물론 다른 자녀들조차 알지 못했다. 하느님께 드리는 예물을 자랑하듯 알리길 거절한 한씨의 뜻이었다.
정 추기경 예방 당시 동행했던 둘째 딸 홍레지나씨는 기부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절약하며 사실 수 있으셨냐”고 물었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쓰고 싶은 거 다 쓰면, 하느님 앞에 가져갈 게 뭐가 있느냐.”
한씨의 대답이었다.
홍레지나씨는 “정 추기경님께 기부금을 전달하고 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으로 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소식을 전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어머니는 그날 집으로 돌아 오시자마자 새벽 4시까지 감사기도를 바치셨다”고 회고했다.
지병을 앓던 홍씨는 지난달 26일 선종했다. 연이어 28일 한씨가 뇌출혈로 선종하면서 부부의 장례미사는 한날한시, 30일 서울 대치동성당에서 동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황인국 몬시뇰과 대치동본당 주임 김자문 신부 주례로 봉헌됐다.
특히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추도사를 통해 부부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고 “이 뜻이 세상에 널리 퍼져 더 많은 이들에게 은총과 선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추기경은 추도사에서 “자매님과 형제님께서 평생 근검절약해 모은 재산은 단순히 재물이 아니라 부부 평생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선행이 생전에 이웃에게 알려지기를 꺼려하셨던 자매님의 뜻이 있었기에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이렇게 감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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