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동생 만난 정지용 시인 아들 정구관씨
“한시도 꿈엔들 잊으리야”
아버지 찾아 나섰다 두 동생들마저 실종둘째는 생사도 몰라
『네가 정말 구인이야?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꿈만 같구나』
『형님, 이제야 제가 돌아왔습니다. 한시도 형님을 잊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3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지난 2월 26일. 반백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남북의 두 형제는 이렇게 첫 대면을 시작했다. 남측의 정구관(베네딕도·73·경기도 의정부시)씨와 북측에서 온 동생 구인(68)씨. 이들은 벅찬 가슴으로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특히 지난 2차 상봉 때 후보자 명단에 올랐다가 아쉽게 탈락했던터라 이날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두 형제의 만남은 「향수」의 시인 정지용(1902년 충북 옥천출생·프란치스코) 선생의 아들이란 점에서 상봉전부터 큰 화제가 됐다. 50년 한국전쟁 발발후 정지용 시인은 교직에서 물러나 서울 녹번동 자택에서 두문불출하며 책과 서예로 소일하던 중 『시내에 갔다 오겠다』며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으며, 후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평양 감옥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시인은 부인 송재숙(프란체스카·71년 작고) 여사와의 슬하에 3남 1녀를 두고 있었다. 더구나 아버지를 찾겠다고 집을 나선 장남 구관씨의 두 남동생 구익(둘째)씨와 구인(셋째)씨마저 실종돼 집안은 풍비박산났다.
이번에 북에서 온 구인씨는 상봉 희망 명단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함께 행방불명됐던 줄째 형 구익씨를 포함시켜 남측 가족들을 당황하게 했다. 북의 동생이 실종된 아버지와 구익씨에 관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으로 믿었던 구관씨는 셋째 동생이 보내온 생사확인 명단을 보고 가혹한 자신들의 운명에 눈물을 삼켰다.
구관씨는 아버지와 동생들이 실종된 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월북자 가족이란 멍에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은 꿈도 꿀 수 없어 봇짐장수, 광부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왔다.
『동생과 재회하고 보니 부모님 생각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어머님께서는 임종하시는 그 순간까지 실종된 두 동생 걱정에 눈물지으셨어요. 이번에 상봉하게된 것도 주님께서 어머님의 간절한 염원을 들어주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구관씨는 17세 소년으로만 기억했던 동생이 백발노인으로 돌아오자 세월의 무게를 뼈져리게 느꼈다고. 또한 함께 나누지 못했던 그 50여년의 세월을 안타까워했다.
『내년 아버님께서 태어나신 100주년을 맞아 지용제 행사를 비롯한 다양한 경축사업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이런 뜻깊은 날을 앞두고 동생과 만났으니 너무나 감개무량합니다. 앞으로 이땅의 모든 실향민들이 그리운 가족들과 마음껏 상봉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마승열 기자>
■ 방북한 우종열 할머니
남은 세월이나마 함께 할 수 있길…
기대와 꿈마저 녹여버렸던 한의 세월. 반 백년의 시공을 건너 최근 날아든 소식에 우종열(데레사·71·청주교구 내수본당) 할머니는 실밭같은 희망을 새롭게 지피며 삶을 데워 가는 모습이었다.
방북단 출발을 닷새 앞둔 지난 2월 21일 방북 예정자가 상봉을 포기하면서 그적으로 방북 대열에들게 된 할머니는 회한의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뿐이다.
『그냥 죽는 줄 알았지요. 하느님께서 주신 큰 선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
그러나 자신을 그트록 아껴주던 큰오빠는 명단에 없고 그의 체취나마 느끼게 해줄 조카 우금원(60)씨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우 할머니는 착잡해지기도 한다.
일제시대 공주농고를 졸업하고 첫 발령지가 평양으로 난 큰오빠 종민씨를 따라 어머니와 평남 대동군 율리면에서 살았던 우할머니는 석탄광산 소장 일을 하며 사과 과수원을 하던 오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사과를 따 건네던 큰오빠의 손길을 잊을 수 없다는 할머니는 고향에서 죽고 싶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1943년 고향인 충남 괴산으로 나온 후 다시 그 길을 되짚어 올라가지 못했다.
우 할머니는 북녘 가족과의 만남에 대한 설렘 때문에 새벽이면 일치감치 일어나 기도로 아침을 열며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이런 날이 올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드령. 남은 자손들끼리나마 정을 나누며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렵게 마련한 점퍼와 바지, 양말, 감기약, 소화제 등 선물을 들어보이는 할머니의 얼굴과 손을 설렘에선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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