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 이어 영국으로 이어진 순례 여정의 첫 순서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였다. 옛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이며 ‘근대의 아테네’라고도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
에든버러 중심가의 성마리아 주교좌 성당을 찾았다. 마침 주일이었고 교중미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주보 봉사자등 전례 봉사자들이 성직자들의 수단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성당 입구에서, 또 제의방에서 미사 안내와 준비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 에든버러 가톨릭 신자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성마리아 주교좌 성당 전경.
▲ 성마리아 주교좌 성당 내부.
영국 스코틀랜드 역시, 복음화가 이뤄진 것은 성 니니아노가 397년 이 지역에 도착한 이후부터라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선교가 활성화 된 것은 563년 아일랜드 출신 성골룸바가 수도사 여러 명을 이끌고 아이오나에 정착하면서 비롯됐다.
탁발수도회, 스코틀랜드 지적 영성 형성에 공헌
이후 수도원을 통해 스코틀랜드는 영성적 문화적 경제적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고 특히 탁발수도회들은 스코틀랜드 고유의 지적인 영성을 형성하는데 많은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영국 안 또 다른 나라’로 불리는 스코틀랜드는 비록 전체 영국 안에서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인구수를 보유 하고 있지만 자신들 만의 전통을 고유한 정체성으로 확립시킨 고집스런 면을 인정받고 있는데, 종교적인 원류도 그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의 교회 역사도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 열풍 속에 교계 제도가 폐지되자 가톨릭은 작은 종교 단체로 전락했음은 물론 200년 동안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성마리아주교좌성당의 역사에서 처럼 남아있던 가톨릭 성직자들이 지하에서 신자들을 위해 봉사할 뿐이었다.
이후 감자 대기근으로 인해 아일랜드 신자들이 대거 스코틀랜드로 유입 하는 등 정치 경제적 변화 속에 가톨릭 신자 수가 급증, 1878년에는 교계 제도가 새롭게 재건되는 전환기를 맞았다.
20세기 들어서는 2차대전 등을 통한 동유럽 및 이태리 지역 들에서의 가톨릭 난민 유입, 해외 여행 확대, 높아진 교육 수준 등을 배경으로 가톨릭에 대한 종교적 편협성도 누그러지는 현상이 드러났다. 특히 교황 요한 23세 이후 가톨릭교회와 지역 교회 및 각종 종교 단체들 사이는 매우 우호적인 관계로 변화됐다고 한다.
홀리루드 수도원 보며 옛 교회 영화 떠올라
199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스코틀랜드의 그리스도교 전래 1600년을 맞아 지역 가톨릭 신자들의 복음화와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발표한 것도 스코틀랜드 교회에 대한 특별함을 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배경 속에 찾아본 홀리루드 수도원(Holyrood Abbey)은 스코틀랜드교회의 지나간 역사를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건물 뼈대만 남아있는 수도원은 이제 수도원이라기보다 유적지로 소개됐다.
수도원 옛터와 그 곁에 지어진, 15세기부터 스코틀랜드 왕들의 거처로 사용됐던홀리루드하우스 궁전(Palace of Holyroodhouse)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었다. 이 궁전은 지금도 엘리자베스 영국 국왕이 스코틀랜드에 체재할 때 왕실 거처로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 지난해 9월 영국을 방문한 교황 베네딕도 16세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사진이 전시된 홀리루드궁전 내부.
그저 한쪽 벽면의 골격 만을 내놓은 채 남아있는 수도원의 모습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라는 시 제목처럼 역사의 뒤안길 속으로 흐릿해져가는 옛 교회의 영화를 보는 듯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 1128년 건설된 홀리루드 수도원. 현재는 외벽만을 남기고 있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역사를 이끌었던 성 자일스 대성당(St. Giles' Cathedral). 홀리루드수도원과 에든버러 성을 연결하는 약 1마일의 거리, ‘로열 마일'에 위치해 있었다. 로열 마일은 평민이 밟을 수 없는 귀족들만이 지날 수 있었던 지역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 에든버러 로얄마일에 위치하고 있는 성 자일스 대성당(St. Giles' Cathedral). 스코틀랜드 역사를 대변하는 장소로 상징되는 이 성당은 중세이후 스코틀랜드의 프로테스탄트화를 추진하던 교회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성 자일스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스코틀랜드 역사를 대변하는 장소로 상징되는 이 성당은 중세이후 스코틀랜드의 프로테스탄트화를 추진하던 교회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스코틀랜드 프로테스탄트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장소라 한다. 나무조각 장식이 화려한 내부, 왕관 모양의 뾰족 지붕이 특이했다. 스테인드글라스와 파이프오르간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곳이다.
중세와 근대의 아름답고 전통적인 건축물들이 가득한 고풍스런 에든버러의 모습에서는 한편 그 오랜 역사 속에 치러내야 했던 종교적 갈등의 역사가 어려 있었다. 그 안에서 면면을 이어온 신앙의 자취들은 다시 한 번 교회의 흐름과 신앙에 대한 상념을 안겨주었다.
▲ 12세기에 건축된 에든버러의 랜드마크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