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휴가철을 보내며, 많은 신자들이 전국 각 교구 성지 곳곳을 잇는 도보순례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수원교구는 교구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교구 내 15개 성지를 연결한 도보성지순례길 ‘디딤길’을 구축, 많은 신자들이 도보순례에 나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매일같이 수많은 순례객들을 맞이하는 남양성모성지 전담 이상각 신부가 이 시각, 곳곳에서 도보순례의 길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동안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먼 길을 걸어서 이동한 적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또는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 길을 몇 시간이고 걸어본 일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보통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고, 사람들에 쫓겨서 빠르게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 생활에서 자동차는 없어서는 안 될 이동 수단이 되었고 조금만 먼 거리도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선교사 일행이 아프리카에서 겪은 이야기는 이러한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한참 길을 가던 원주민 짐꾼들이 갑자기 길가에 주저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달래도 보고 돈을 더 주겠다고 흥정을 해 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당신네 백인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너무 속도를 냈어요. 이제는 우리의 혼이 우리의 몸을 따라 잡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요즘처럼 무덥고 습기가 많고 무더운 날씨에 먼 길을 걸어오는 동안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자동차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었던 여러분의 영혼이 여러분을 따라올 시간을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왔던 여러분은 모처럼 오랜 시간 걸으면서 이런 저런 여러 생각들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았을 것이고 또한 함께 걷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아픔도 나누고 위로와 우정도 나누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고통의 표정이야말로 인간의 얼굴에서 가장 진실한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고통을 겪으면서 모든 위선의 가면을 벗고 진정한 나, 발가벗은 채로의 나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고통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체험할 때 정직해집니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여정이 여러분들에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또 그만큼 값지고 소중한 체험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동안 뒤쳐져 있던 여러분의 영혼을 만나고 진정한 나와 또 가족과 친구,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과 진한 우정을 나누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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