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종교계가 바람직한 모습의 통일을 구현해 나가려면 종단 상호간 원활한 소통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리 사회 전반에 통일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종교인들이 예언자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아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평화문화재단과 한국종교인언론인협의회가 11일 오후 서울 견지동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에서 ‘종교계 통일준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나왔다.
통일부가 발주한 통일기반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세미나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종교인들만을 대상으로 이뤄진 통일의식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마련돼 통일을 향한 도정에 서있는 한국 종교계의 현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주요 종단 언론인들이 토론자로 참여해 각 종단의 현황을 공유하고 바람직한 모습의 통일을 이뤄내려면 종교인들 간의 연대와 공동 활동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이뤄냈다.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유연한 상호주의’가 종교인들이 취할 수 있는 대북정책의 현실적 대안”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번 조사 결과는 ‘유연한 상호주의’의 외연 확대를 위해 종교인들이 더욱 분발해야 함을 보여주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세미나에서 토론자로 나선 원불교신문 채일연 기자는 “종교계의 통일 논의에 있어 통일 개념과 운동, 정책에 대한 과도성이 있을 뿐 아니라 통일 논의와 신자들 사이에 괴리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가톨릭신문 서상덕 기자도 “각 종단 내부의 통일에 대한 의식들은 대체로 빈한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각 종단 내부에서부터 통일을 향한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주제발표문 요약.
■ 종교계 통일 인식과 운동, 그리고 연구의 흐름 / 이찬수 강남대 교수
“사랑·자비 관점서 포용 대상에 제한 없어야”
▲ 이찬수 강남대 교수
한국 종교계를 대표하는 통일 관련 연구 논문, 보고서, 선언문 등에서는 한결같이 남북통일의 당위성을 전제하고 주장한다. 일반 종교인이라면 통일의 이유로 민족적이거나 실리적인 이유를 들 수 있겠으나, 전문 연구자의 글 속에서의 통일은 사랑 혹은 자비를 근본 가치로 여기는 종교들의 필연적 결론이자 목표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통일’의 정치적 이념성에 대한 종교적 순화 작업의 사례
통일에 대한 입장과 기대는 모든 종단들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통일의 목적, 방법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입장들이 존재한다. 통일에 대한 기대는 비슷하면서도 목적과 방법론상에서 달라진 이유 중 하나는 정치 지도자들이 ‘통일’의 개념과 방법론을 정권의 구미에 맞게 규정하고 각종 매체를 통해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한 데 기인한다.
이런 현실을 염두에 두고, 통일이 특정 이념에 휘둘리는 정치적 행동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각 종단에서는 일종의 대안적 언어를 개발해 구사하기도 했다. 가톨릭에서 강조하는 민족 ‘화해’, 개신교에서 추구해온 ‘희년’ 운동 등은 통일을 종교적 일상 안에 뿌리내리기 위한 나름의 시도들이라 할 수 있다.
통일과 선교/포교
각 종단에서 통일을 당연시하고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선교’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권에서 사용하는 ‘선교’(宣敎, mission)는 ‘전도’(傳道, evangelism)와 구분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 ‘선교’가 사랑, 자비, 생명, 평화 등 신의 뜻을 확장시키는 개인과 교단의 행위 전반을 뜻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면, ‘전도’는 종교적 교리로 사람들을 변화시켜 교단의 양적 성장을 도모하는 좀 더 구체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선교와 전도는 ‘간접적 선교’와 ‘직접적 선교’로 나누어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과 자비, 화해와 일치 같은 종교적 가치를 구체화시키는 넓은 의미의 선교는 이렇게 여러 종단이 동의하고 합의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져가고 있다.
종교계 통일 논의의 흐름과 한계
종교인들의 통일을 위한 노력이 남북 관계를 개선시키는 계기로도 작용하지만, 지난 흐름을 돌이켜 보면 정권이 바뀌면서 종교인에 의한 남북 교류도 부침을 겪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7·4남북공동성명이나 88서울올림픽, 6·15선언 등 굵직한 국가적 현안에 따라 종교인들의 통일 논의가 활성화되기도 하고, 정권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위축되기도 하는 현상 자체가 종교인에 의한 통일 논의에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종교인의 통일 논의는 정치적 환경 변화에 종속적인 측면이 크다.
그런 점에서 종교와 정치를 한 몸처럼 생각하는 천도교의 ‘교정쌍전(敎政雙全)’ 사상은 종교인이 통일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새겨야 할 부분이 많다. 비록 정치 및 제도적 통일로까지 나아가기는 요원하다고 해도, 근대 서구의 정교분리식 접근으로는 종교인의 통일 논의와 운동이 당대 정치적 지형에 대한 종속성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을 인정하는 가운데 화해를 시도하고 경제적 지원과 교류를 하는 식의 중간 과정은 필수적이다.
유연한 상호주의
종교인에 의한 통일 논의라면 그 논의 자체가 종교적일 필요가 있다. 종교적 입장에서 남북통일은 실리주의나 실용주의적 판단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의무론적 당위에 가깝다.
종교적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포용의 대상에 제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 종단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가르침을 반영하며 작성한 통일관은 주로 이런 포용주의적 시각을 유지한다. 대다수 종교 연구자들이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연한 상호주의’는 종교인이 취할 수 있는 대북정책의 현실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계 통일 논의는 반드시 ‘종교 내 일치’, ‘종교 간 화합’의 정신 위에서 이루어져야 종교적 설득력도 있고 사회적 설득력도 확보할 수 있다. 향후 종교인에 의한 통일 연구와 논의는 급변하는 정세를 읽고 의식하되, 좁은 의미의 전도가 아닌, 넓고 넓은 의미의 선교를 지향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종교계와 정치계 또는 정부 조직과의 협조 체계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
■ 통일 의식 조사 결과에 나타난 한국 종교인 통일의식 / 박문수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필요성 강조”
▲ 박문수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 통일에 대한 관심과 통일 필요성 인식도
먼저 통일에 대한 개인적 관심(매우 관심 있다+관심 있는 편이다)에 대하여는 관심의 비율이 ‘61.9%’로 나타났다.
교차결과에서는 60세 이상 연령층을 제외할 때 연령이 증가할수록 통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통일에 대한 필요성(매우 필요하다+대체로 필요하다) 인식비율은 ‘70%’수준이었으나, 필요성의 강도(强度) 측면에서 ‘통일이 매우 필요하다’는 ‘20%’ 수준에 불과하였다.
특히 29세 이하 연령층이 가장 낮았고, 60세 이상 연령층을 제외하면 연령이 올라갈수록 통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 우리 사회의 통일준비 정도 평가와 통일 장애요인에 대한 인식
우리 사회의 통일준비 정도에 대하여는 ‘9.7%’만이 잘되어 있다고 평가하였다. ‘매우 잘 되어 있다’ 0.4%를 합하여도 그 비율은 10.1%에 불과하다.
통일의 장애요인에 대하여는 ‘통일 비용(82.8%)’, ‘북한의 군사적 위협(82.4%)’, ‘남북한 차이/갈등(80.8%)’ 등이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교차결과를 보면 남성은 ‘통일 비용(84.1%)’을, 여성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84.0%)’을 가장 많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통일의식 제고 방안
우리 국민의 통일의식 제고 방안에 대하여는 ‘한반도 통일비전 제시(56.0%)’와 ‘통일 교육 확대(52.0%)’가 가장 많이 언급되었고, 이어 ‘통일 논의 활동 지원(34.9%)’, ‘남남 갈등해소(33.4%)’, ‘여야의 초당적 협력(22.2%)’ 순으로 언급되었다.
- 통일세 징수에 대한 동의도, 납부 의향 및 통일세 비율
통일세 징수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43.9%’로 찬성이 절반에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세금 징수에 적극 동의(매우 동의한다)하는 비율은 ‘2.6%’에 불과하였다.
교차결과를 보면 성별로는 남성층, 소득층위에서는 500만 원 이상 소득계층, 종교별로는 개신교 신자층에서 상대적으로 동의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통일세 지불 의향은 40대와 50대 연령층이 각각 ‘43.2%’와 ‘45.6%’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향률이 높았으며, 종교별로는 개신교와 원불교 신자층에서 의향률이 높게 나타났다.
세금 지불 의향자의 부담 가능한 세율로는 월소득의 1% 미만이 전체의 절반을 조금 상회(53.7%)하였고, 나머지는 ‘1~3% 미만(34.0%)’, ‘3~5% 미만(9.9%)’ 순이었다.
- 종교의 통일기여 방안
종교가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는 ‘민족화해 노력을 통해 남북한 사회 이질성 해소’를 꼽은 비율이 ‘51.0%(1+2위)’로 가장 많았고, 이어 ‘급변 사태 시 사회복지 차원의 대책 마련(40.5%)’ ‘인도적인 대북 지원(33.3%)’ ‘남남 갈등의 해소(30.1%)’ 순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의 함의
조사결과에서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결과들은 네 가지 측면이다.
먼저, 통일에 대한 관심과 통일의 필요성 인식 모두 낮은 점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이 두 영역에 대한 관심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정부·종교 차원에서 통일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으면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통일준비 노력이 시급하고 구체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통일비용과 같이 구체적인 준비에 대하여는 소극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특히 통일세의 경우 개인적으로 징수가 확정될 경우에만 비교적 높은 납부 의향을 보이고, 다른 가능한 수단들을 선택할 수 있을 때는 매우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세 번째, 종교인들은 북한 정권/지도부와 북한 주민을 구분해서 평가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종교계가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 통일준비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 현 단계에서 가장 적절한 해법이다.
마지막으로, 종교계의 통일준비 실태도 정부의 통일준비 못지않게 미흡하다고 평가한 점이다. 종교계는 종교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내부에서는 실질적인 준비를 하고 있지 못하다. 이 점을 종교인들은 잘 인식하고 있었다. 정부와 대등한 협력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실질적인 준비에 나설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