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속의 모든 것을 짜내며 생명과 생명을 잇는 낙타, 그의 눈은 늘 갈증을 씻어줄 오아시스를 향해 있다. 사막의 낙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목마름 속에 자신과 싸우며 채워온 4년. 최근 한국천주교회사인형 제작을 마친 임수현(즈느비에브·46·서울 가회동본당)씨의 마음은 오랜 갈망 끝에 오아시스에 도달한 낙타의 감격, 그것이 아닐까. 작품에 몰입해있던 4년 동안 자신의 마음에 어떤 것도 침입하길 꺼려 휴대폰도 없애고 성당과 작업실만을 오가며 지냈다는 임씨.
『제 인성으론 숨만 쉬고 순교자들의 하느님 향한 마음이 저를 이끌어 빚어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교회사와 관련된 숱한 자료를 뒤적이며 소재를 찾고 고증을 받으며 작품을 준비한 시간까지 합치면 10년은 족히 들었을 세월, 그 시간 동안 뿌린 땀의 성과물을 드러낼 때를 앞두고 만난 그의 얼굴에서는 첫 아이를 하느님께 바치는 부모의 심정이 전해져왔다.
누구라도 한번쯤 만들어볼 마음이 들게 하는 두 뼘 남짓한 크기의 인형. 그러나 재주 이상의 것이 배어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하는 그의 작품은 현대인이 잃어버리고 사는 「본향」을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대하는 순간 턱하고 숨이 막히는 체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자연건조했음에도 갈라지거나 터지지 않는 인형들, 그것은 아마 순교자들의 피가 스며들었음직한 이 땅의 흙으로 빚어낸 것이어서 더욱 그럴 것 같다.
구슬꿰기, 가정교사 등 다양한 일을 하다 느지감치 인연을 맺게 된 전통인형 공예의 길에 이르는 그의 여정은 생명을 낳아 기르는 일에 익숙해지길 준비하는 시간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순간순간의 기도와 매일미사로 하루하루를 잇고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땐 성지순례길에 나서길 마다치 않았던 지난 시간. 그렇게 해서 그가 직접 밟았던 순교사적지만도 해미, 갈매못, 미니래, 이천 등 수십 곳이었다. 이런 까닭에 그가 흙으로 빚어낸 73명 순교자 인형은 하느님 나라를 앞서 살다간 순교선조들의 숨결을 담아 살아있는 양 다가온다.
지난 82년 세례와 함께 인형공예의 길에 들어선 그에게 올 4월 15일 절두산순교기념관에서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특별전시회는 첫 개인전인 셈이다.
『고증이 생명인 작품의 특성상 혼자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어요. 늘 하느님을 체험하고 기도하며 작업했기에 제 것이지만 저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돼요』자신의 인성으론 도저히 할 수 없었을 일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그래서 그에겐 더 큰 기쁨이다.
『조선 500년의 역사와 한국의 미를 담은 구유 시리즈도 흙으로 빚어보고 싶습니다』
손재주만이 아니라 기도로 빚어낸 그대로의 감동, 200년 전순교자의 숨결이 흘러 오늘과 만나는 체험을 나눔으로써 교회 고동체 모두의 삶이 살끼질 바라는 그의 희망에서는 삶과 믿음에 대한 새로운 관조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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