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옵니다. 벌써 벼 이삭이 패고 영글어가기 시작해야 하는데, 아직도 이삭이 패지 않은 곳도 있고, 과일과 채소들이 햇빛을 보지 못해서 제대로 성숙(成熟)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농민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어떤 이는 비가 많이 오는 것 때문에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옛날에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임금을 비롯한 나라의 모든 백성이 자신의 덕이 부족해서 일어난 현상이라며 자기반성부터 했다고 듣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누군가의 반성이나 뉘우침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저 역시 비가 그만 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비를 그만 내리게 해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자연환경에 대해 너무 무절제하거나 무관심했다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잘못에 대한 벌(罰)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제는 용기를 내어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먼저, 그동안 자연환경을 잘못 대했으며 무절제하게 이용했음을 인정하는 회개의 시간을 갖고, 비가 적당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온 국민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입추가 지나도록 장마가 계속되면 날이 개기를 바라며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성과 마음이 모아지면 좋을 텐데, 그런 마음이 부족한 듯합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늘의 일’보다는 자기의 일에 바쁘고, 공동의 일보다는 개인의 일에, 하느님의 일보다는 사람의 일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이야기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반박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호되게 야단치십니다. 그리고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시려는 속마음을 모르고, 자기의 생각대로 반박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심지어 그 판단과 행동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서 온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가르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고집한다면, 아니 자기만 살려고 한다면, 정녕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 2)
살면서 ‘나에게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반드시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는 믿음과 생각이 중요합니다.
얼마 전, 가깝게 지내던 자매님이 빗길에 교통사고로 즉사하시고, 그 남편분은 중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평상시 열심히 사시던 분인데, 별안간의 사고로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그 가족들과 저에게 그 사건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족들이 ‘하느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어 일어난 사고일 것이다’라고 하며,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모습에 그나마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신앙은 전수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 담겨진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무엇을 해야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고민하며 완전함을 향해 가는 삶, 한편으로 고달프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영광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빛나는 영광을 차지하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릴 수 있는 지혜롭고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은총과 사랑의 기우제를, 원망과 미움의 기청제를 지내면서 말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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