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혼례에서는 예물로 신랑이 나무로 만든 기러기 한 쌍을 신부집으로 가지고 갔다고 하는데 기러기 한쌍은 새 신랑과 신부를 뜻하는 것으로, 기러기는 일생동안을 같은 짝만을 지키고 한 마리가 죽어도 다른 한 마리는 일생동안 새로운 짝을 찾지 않고 기러기들 간에 조화를 유지하고 위계질서를 지키며 자신의 존재를 남기려는 본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러기 예물은 신랑신부가 이 기러기같이 결혼생활에서 일생을 함께하며 집안의 질서를 잘 지키고 우애를 다지며 자손들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결혼식에서는 예물로서 반지를 교환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다. 이 반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반지는 청동기시대부터 인류역사안에서 함께해온 장신구로서 신앙과 왕권의 상징이었다. 원형의 반지는 태양신의 상징이며 왕권의 보증(인장반지)이었다는데 반지를 결혼예물로 삼은 이유는 헬레니즘시대에 사모스의 독재자인 폴리크라테스(?-기원전 515년)왕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왕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고, 커다란 에메랄드가 박힌 왕의 반지를 높은 탑 위에서 바다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가 던진 반지는 물고기가 삼켰고, 한 어부는 그 물고기를 잡아 반지를 찾아내고 그 왕의 반지를 다시 폴리크라테스에게 가져다준다. 헬레니즘의 신들이 정한 운명을 인간은 바꿀 수 없는 것이며 여기서 그 반지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징표가 되는 것이다. 결국 반지는 사랑과 신의로 매듭지어진 되돌릴 수 없는 운명과 인연의 끈인 혼인예물로 상징되는 것이다.
혼인은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것(창세 1,27)에 의해 이미 확정지어진 운명이며 따라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이란 하느님의 창조의 연속선 위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를 다시 확인하시며 혼인을 통해서 두 인격체가 하나가 됨을 선포하신다(마태 19,3 이하). 더 나아가서 사도 바오로는 혼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어 하나가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에페 5,25) 가르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운명적인 일치의 상징으로 결혼반지는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의미에서 이교 문화였던 반지교환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더욱 상징화시켰다. 오늘날 사제는 혼인예식에서 반지를 축복하며 말하기를 반지는 부부가 서로 나눌 사랑과 신의의 표지라고 선포한다. 또한 신랑신부는 반지를 교환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립니다”라고 교우들 앞에서 선포한다. 이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끈으로 맺어진 부부로서 죽을때까지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운명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 혼인반지의 의미는 알지 못하면서도 다이아나 사파이어 등 보석으로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경향이 지나치며 혼인서약과 결심보다 예물에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값비싼 결혼반지를 해놓고도 잃어버릴 것을 염려하여 모조품 반지를 끼고 사는 부부들이 많기에 사랑도 가짜요, 결혼생활도 가짜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또한 혼인반지 대신 묵주반지를 예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묵주반지는 성물(聖物)로서 언제나 축복을 받을 수 있지만 혼인예물반지는 혼인예식 중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마땅히 혼인반지로서 혼인예식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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