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탁탁…』『칙~촤아』먹기 좋게 잘라진 감자와 양파, 돼지고기가 이따금씩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 위에서 지글지글 볶고 있다. 점심시간을 앞둔 낮 12시 돈보스꼬 청소년센터 식당. 벌써부터 코를 자극하는 자장 냄새에 아이들의 군침 넘어가는 「꼴깍」고리가 들려오고 자장면이 싫어지면 어른이 된 것이라지만 함께 기다리는 센터의 수사들도 한 달에 한 번 먹는 「오리지널」자장이 기다려지기는 마찬가지.
이곳에서 자장을 만들고 있는 빨간 모자의 주방장들은 한국서 일하는 화교 주방장 모임 「십강회(十强會)」(회장=안진봉)회원들이다. 한 달에 한 번 돈보스꼬 청소년센터 아이들에게 자장밥을 만들어 주는 이날을 위해 쉬는 날을 조정해 가며 모인 주방장들이 오늘 하루 만드는 자장의 분량은 1000명 분. 쇠도 씹어 먹는다는 나이의 180여명 아이들은 보통 2인분을 먹어치우고 나머지 700인분은 대림동 살레시오 나눔의 집과 요셉의원으로 배달돼 행려자들과 의원을 찾는 불우 이웃들의 식사가 된다. 말이 1000명 분이지 양파 80㎏만 승요차 뒤 트렁크에 한가득, 돼지고기 4㎏, 감자 한박스, 양배추 5통 등 썰어놓은 야채만도 7~8 광주리다.
화교로 태어나 열 여덟, 열 아홉 어린 나이에 중국 식당에 드어가 프라이팬 닦는 것부터 시작하며 주방장에 이르기까지 함께 요리를 연구하고 한국 생활의 애환을 나누던 이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좋은 일에 쓰고 싶다는데 뜻을 모은 것은 3년 전의 일이다. 십강회 회장 안씨가 일하던 중국식당의 사장 전귀옥(이냐시아·서울 반포본당)씨의 도움으로 독립문 근처의 무의탁 노인들의 쉼터에 자장면을 만들어 주기 시작한 이들은 처음으로 남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기쁨에 힘든 줄도 모르고 요리를 만들었다. 99년부터는 돈보스꼬 청소년센터와 인연이 닿아 어쩌면 자신들의 과거의 모습일지도 모를 불우 청소년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이제는 삶의 일부가 돼 한 달에 한번 이곳에 오지 않으면 기분이 이상할 정도가 됐단다. 쉬는 날을 맞추는 게 어려울 때는 아침에 와서 자장면을 만들고 끝나자마자 일터로 달려가기도 한다. 이들이 소외된 이웃에게 자장면을 만들어 주는 데에는 숨어서 도움을 주는 이들도 많다. 이곳을 소개해준 전귀옥씨와 뜻을 같이한 몇몇 이들이 매달 재료비를 대고 있다.
이들 주방장들은 아직 신앙을 갖고 있진 않지만 이곳에서 봉사하는 많은 이들을 보며 하느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안진봉씨는 『별것도 아닌 일인데 아이들과 노인들, 행려자들이 맛있게 먹는 걸 생가하면 흐뭇해진다』며 『작은 일이지만 하늘에 저축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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