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베드로 대성당에 가면 사람들은 먼저 크고 웅장한 성당의 모습과 뛰어난 조각품들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97년 성지순례 후 베드로 대성당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성당의 모습이나 뛰어난 예술작품들이 아니라 하나의 성수대였다. 이 성수대는 천사 두 명이 성수를 받쳐들고 있는 모습인데 특이하게 이 천사들의 얼굴은 모두 성수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며 「네 죄를 보지 않겠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이 작품이 성수가 가지는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고 아울러 사랑과 자비의 종교인 우리 그리스도교를 가장 잘 상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 복음은 복음서에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간음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계실 때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시험적 질문을 하는데, 예수님은 즉답을 피하시고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시다가 『되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라고 말함으로써 율법학자들의 책략에서 벗어나고 그 여인에게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다시는 죄 짓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의 의미와 예수님이 보이신 말과 행동 즉 「땅에 무엇인가를 쓰고 계셨다」라는 것의 의미와 마지막 부분 오늘 복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 자리에서는 율사들의 질문의 의미와 「땅에 무엇인가를 쓰고 계셨다」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같이 묵상해보고자 한다.
이스라엘에서 간음죄를 범한 여인은 기혼녀는 사형으로, 약혼녀는 돌로 쳐죽이라고 되어 있다. 때문에 오늘 복음의 여인이 약혼녀일 경우 당연히 돌로 쳐죽이면 되는데 문제는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던 로마인들이 사형권을 예루살렘 최고의회에서 빼앗아 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음녀를 돌려 쳐죽이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해결에만 머물 수밖에 없는 문제였지만, 그러나 이 문제 뒤에 있는 배경은 예수를 어려운 처지에 몰라넣기에 충분한 함정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율법의 규정대로 돌로 치라고 한다면 자비에 대하여 지금까지 해 온 가르침을 부인하게 될 위험이 있었고, 더 고약한 것은 사형선교의 권리를 가진 로마 정부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 그 여인에게 동정을 느끼고 불쌍히 여겨 용서하라고 하면 예수님은 율법을 어긴 자로 낙인찍힐 뿐만 아니라 그러한 범죄를 사형으로 처벌하기 않았던 원수인 로마의 지지자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는 미묘한 문제였다. 바로 이 미묘한 문제 앞에서 보이신 그분의 행동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 계신 행동」이었다.
무엇을 쓰고 계셨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고발자들의 죄를 나열했다는 성 예로니모의 설, 혹은 다니엘서에 하느님의 손가락이 쓴 글을 썼다는 설(다니 5, 24) 아니면 예레미야서 17장 13절이었다는 설, 또는 예수께서 침착성을 찾고 생각하기 위하여 그저 땅에 낙서형식의 글이었다는 설들이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확실한 것은 없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복음서에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내용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던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몇 년전 누가 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부분에 대해 묵상한 글을 읽은 적이 잇기에 그 뜻만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분은 「땅에 무엇인가를 쓴 그 행동」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의미가 없다면 두 번이나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는 행동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분은 「땅」과 「손가락」에 주의하면서 어린 시절 뾰족한 못으로 글자놀이를 한 후 그 다음날 그 자리에 가보면 여러가지 이유로 그 글자들을 잘 알아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땅에 쓴 글씨의 의미를 찾는다.
이분의 결론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는 행동은 첫째로 「잘 기록되지 않는다」는 점과 둘째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로 본다. 땅에 무엇인가를 쓰는 행동의 의미는 『나는 당신의 죄를 마음 속에 각인시키지도 않을 것이요, 오래도록 기억하지도 않겠노라』라는 의미가 아닐까 해석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성서학자들이 보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잘못, 특별히 자신을 향한 잘못에 대해서는 가슴 깊이 되새기는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면 분명 의미 있는 묵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하고 결론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한다면, 단순히 웃음으로만 흘려 버릴 수 있는 묵상은 아니리라 생각해 본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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