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아 알렐루야』
부활의 큰 기쁨과 축복이 가톨릭신문 독자들과 독자들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한번씩은 뜻하지 않는 사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큰 슬픔이라면 우리는 그 앞에서 절망하게 됩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했던 사람들, 특별히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랐을 제자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과 같은 절망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 잇는 우리에게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그분의 죽음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 당시 현장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았을 제자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 그분을 믿은 것은 우리의 실수요, 우리가 가졌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고』.
사실 제자들은 낙담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들이 아니라, 평소에는 예수님을 멀리서나마 동경하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그리고 정이 많은 몇 명의 여자들만이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가졌던 제자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제 모든 것은 끝이 났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역설적이고 놀라운 일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 이후 제자들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 났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는 겁 많고 우매하던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비겁하게 도망혔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그리고 그분을 살아 있는 분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되고, 그분을 믿으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선포합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은 이 사실을 입으로만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포를 위해 가장 소중한 그들의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그 진리를 증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그들의 하나 뿐인 소중한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게 만들었을까? 과연 무엇이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와 예수님의 죽음 이후 그토록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 놓았을까?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부활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을 목격하였기에 이 놀라운 변화가 가능하게 되었고, 부활이 있었기에 절망의 제자들은, 희망과 용기의 사도들로 변화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이란 「완전한 절망에서 절대 희망을 안겨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즉 사람들로부터는 버림받고 단죄 받아 완전한 실패로 보이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한 예수님의 삶」이 하느님으로부터는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고, 그러한 사랑의 삶이 인류의 영원한 이상인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절대 희망」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는 절망이란 단어는 있을 수 없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어렵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희망할 수 있고, 우리가 겪고 있는 슬픔과 고통 아니 죽음까지도 이제 부활 때문에 그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다른 이들이 아니라 바로 이 부활의 희망을 선포하는 이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자리는 그렇게 희망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인류가 개발한 가장 고상한 가치인 사랑과 박애, 자비가 더 이상 삶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경제의 논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고, 특히 한국사회는 제2의 경제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실직의 고통과 세계화란 미명 속에서 더더욱 힘겨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실패와 절망인 십자가의 죽음 속에서 인류의 절대희망인 부활이 잉태되고 열매 맺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비록 현실이 부조리하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여전히 우리가 꽃피워야 될 희망의 씨를 보듬고, 그 희망을 꽃피우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부활의 큰 기쁨과 희망이 독자 분들과 가정에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큰 기쁨과 희망이 독자 분들과 가정에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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