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우면서도 품위를 지킨다. 공부에도 최선을 다하지만 여유로운 인간미가 넘친다. 순수한 열정을 지녔으면서도 세상에 대해 아파하고, 세상에 질문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형성해나간다. 불의에 과감히 맞서면서도 신사적인 멋을 잃지 않는다. 한마디로 쿨(cool)하다. 1일 서울 동성고 교장으로 취임한 박일 신부가 꿈꾸는 동성인(人)의 모습이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신 ‘바보’처럼,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역량 있는 일꾼을 길러내고 싶습니다.”
박일 신부는 교장 부임 소감에 대해 “고교 교육에 대해선 상식적인 수준밖에 알지 못하는데 이렇게 막중한 직책을 맡게 되니 막막하다”는 겸손의 말을 내비쳤지만, 그가 말하는 ‘상식’은 ‘상식’ 수준이 아니었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물질문명 속에 파묻혀 육적이고 찰나적인 즉흥적 가치에 매몰돼 있습니다. 인간적인 성숙함을 양보해가면서 공부에 매진하지만 허망함을 느끼기 쉬운 세상이지요.”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영성신학을 전공한 박 신부는 청소년 영성의 핵심도 꿰뚫고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키워내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청소년들에게는 근본적으로 마르지 않는 생명력과 사랑의 연대성이 있습니다. 이들이 ‘왜?’라는 질문을 통해 올바른 길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도록,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전달해주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율형사립학교로 전환된 이후 운영 중인 예비신학생반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지금 이 시기 중요한 것은 예비신학생들이 다른 청소년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지만 ‘특별하지 않은 듯’ 폭넓은 경험을 통해 사고력을 확장해야 하지요. 너무 어릴 때부터 특권의식을 갖게 되지 않도록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배려하는 사목자를 양성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박 신부는 마지막으로 “도첸도 디쉬무스(Docendo discimus)”라는 말로 소신을 밝혔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뜻의 라틴어다. 동성고 제49회 졸업생답게, 자유분방하면서도 기품 있고, 쉽게 규정짓지 않으면서도 명석한 동성인의 면모가 물씬 풍기는 박 신부에게서는 ‘상식적인’ 참 교육자의 모습이 엿보였다.
박 신부는 1981년 사제품을 받고 반포본당 보좌, 공군 군종 신부, 봉천1동본당 주임을 거쳐 1991~1998년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이후 올해 까지 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로 재직해왔으며, 지난 1일 서울 동성고 교장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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