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신앙심이 눈에 띄어 전교회장으로 임명된 여러 평신도들 가운데 손선지(베드로) 성인이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손 성인은 16세의 어린 나이로 샤스탕 신부에 의해 전교회장에 임명됐다.
어린 나이에도 회장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며 신앙의 명맥을 이어왔던 그는 순교할 때도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함께 갇힌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회장의 모범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1820년 충청도 임천군 팔충면에서 손달원(이냐시오)과 임 체칠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손선지 성인은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신앙에 입문해 성실한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가운데 전교회장으로 임명, 김 루치아와 혼인한 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충청도 진잠 장안리로 피신해 장남 손순화를 낳았다.
이후 전라도 고산 다리실로 이사해 지내다가 다시 소양면 대성동 신리골로 옮겨 다니며 담배농사를 주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등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신앙을 지켰으며, 힘든 생활에도 불구하고 공소회장 일을 계속하며 교우들의 신앙을 도왔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서울 절두산성지에서 공개된 손선지 성인의 ‘베네딕도회 메달’은 그가 가진 신앙심과 회장으로서의 역할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손 성인이 가지고 있던 성인 검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메달이 어떻게 한국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교회장으로서 선교사에게 건네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1866년 12월 5일, 병인박해가 시작되면서 포졸들에게 붙잡혀 정문호(바르톨로메오), 한재권과 함께 전주감영으로 끌려갔으며, 신문을 받던 중 회장임이 탄로나 공소를 거쳐 간 서양신부와 교회서적의 출처를 알아내려는 관헌들로부터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다.
같은 해 12월 13일, 북문 밖 진터 숲정이에서 대성동과 성지동 일대에서 체포된 5명의 신자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당시 손 성인의 나이 47세였다. 1968년 복자품에 올랐으며,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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