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종교적 방문
○…7대 종단 대표단이 출국을 앞두고 있던 9월 21일 오전 7시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은 각 종단 언론사와 일반 언론사 기자 40여 명이 몰려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였다. 종단 대표단이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반복해서 쏟아졌지만 김희중 대주교를 비롯한 각 종단 대표들은 “만나면 좋겠지만 정해진 것이 없다”, “순수한 종교적 방문이다”, “정치적 질문은 답하기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오전 7시30분경 7대 종단 대표단은 귀빈실을 나와 인천공항 로비로 이동해 나란히 선 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7대 종단 대표단 화해와 평화를 위한 평양 방문길에 오르며’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김 대주교는 성명서 낭독을 통해 “남북 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평화를 위한 결의를 다짐으로써 남과 북이 통일과 교류협력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한다”며 “방북에 협조해 준 정부 당국에도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 북한을 방문한 7대 종단 대표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하기에 앞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왼쪽부터 원불교 교정원장 김주원 교무, 개신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유교 최근덕 성균관장, 천도교 임운길 교령.
○…21일 평화의 물꼬를 트고자 평양을 방문한 7대 종단 대표를 맞는 북측의 태도는 예전과 확연히 구분됐다. 국빈급 대접으로 방문단을 놀라게 한 것. 대표단을 태운 차량이 이동시 한 번도 정차한 적이 없을 정도로, 시내 교통을 철저히 통제하는가 하면, 일정에 없던 북측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남 위원장,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리종혁 부위원장,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자 6·15 공동위원회 북측위원회 명예대표와의 만남도 성사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제외한 최고위급 인사가 총출동한 셈이다. 김영남 위원장은 “남북이 긴장 속에 대치하고 있는 이 어려운 시기에 평양을 방문해줘서 고맙다”며 대표단을 환대해 남북관계 복원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 평양에 도착한 김희중 대주교를 비롯한 7대 종단 대표가 환영받고 있다.
○…대표단은 이튿날 오전 만경대를 둘러보고, 이어 고려동포회관에서 열린 남북종교인교류대회에 참가해 ‘7대 종단 공동 남북종교인 교류를 정례화하자’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23일에는 백두산을 찾아 7대 종단이 함께하는 평화기도회를 열었다. 귀국일인 24일 오전에는 장충성당, 봉수교회, 불교도청사, 천우당 등 4대 종교 시설을 방문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장충성당을 찾아 장재언 조선종교인협의회 위원장 및 약 40명의 신자들과 만나 “신앙인들은 어려운 시기를 기도로써 이겨낸다”며 신자들을 격려하고, 함께 주모경을 바치는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김희중 대주교는 북측에 “남북이 긴장관계 속에 있는 상황에서 모두가 염원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선 상호신뢰가 중요하다”면서 “불신을 없애고 사랑을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가자”고 당부했다.
24일 모든 일정을 마친 대표단은 중국 심양을 거쳐 오후 8시10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 백두산에 오른 7대종단 대표와 방북단의 모습. 이곳에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기도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