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베네딕토 16세가 9월 22~25일 자신의 모국인 독일을 방문했다. 그는 독일의회에서의 연설을 비롯해 유다교 지도자들과의 만남, 성모성당이 있는 에첼스바흐, 마틴 루터가 사제품을 받고 생활했던 에르푸르트 방문, 동방교회 지도자들과의 만남 등 4일간의 일정을 소화했다.
【프라이부르크, 독일 외신종합】나흘간의 일정으로 22일부터 25일까지 고국인 독일을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시종일관 세계를 향해 보낸 메시지의 요점은 ‘신이 없는 인간 사회와 종교적 무관심이 얼마나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위협하고 그 사회 안에서 힘이 없는 사람들을 새로운 종류의 위험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가’라는 점이었다.
22일 독일에 도착한 교황은 첫마디부터 자신은 “하느님의 백성들을 만나고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 왔다”고 선언했다. 교황은 독일의 정치 지도자들, 교회의 일치운동 상대방인 프로테스탄트 교회, 가톨릭 신자들과 모든 국민들, 언론을 향해 바로 이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84세의 고령인 교황은 매우 분주한 일정으로 피곤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힘 있는 모습을 잃지 않았고 열정적인 신자들은 이번 순방의 슬로건이기도 한 ‘하느님이 계신 곳에 미래가 있다’라고 쓰여진 배너를 흔들었다.
교황이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릴 때,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그를 영접한 크리스티안 불프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메시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공적 영역에서 교회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종교적 가치를 불필요한 것으로 배제하는 것은 우리 문화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불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교회는 오늘날 매우 중요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날 개인들의 삶 안에서 나타나는 분열 현상, 인간 역사와 교회의 구성원들, 특히 성직자들의 악행들 안에서 나타난 분열의 현상들을 어떻게 해소해나갈 것인지를 물었다.
베를린에서 교황의 가장 중요한 행사는 독일의회에서의 연설이었다. 하지만 교황의 의회 연설은 의원들 중 약 100여 명이 교황 연설을 보이콧함으로써 그 의미가 퇴색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설을 마친 뒤 의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교황의 연설은 철학적인 기조를 띠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법, 사회 정의, 인권 등에 있어서 서구 사회와 문화의 진보에 토대가 되었음을 지적했다. 교황은 나치 치하의 서구 역사의 흔적은 정의가 없는 국가는 ‘고도로 조직된 강도떼, 온 세계를 위협하고 세상을 심연의 끄트머리로 몰아갈 수 있는’ 위험한 현실임을 주장했다.
교황은 오늘날 인간 존재를 조작할 위험성이 전례없이 높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인간 존재와 사회에 대한 위협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의 생태운동이 지닌 장점과 옳은 방향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이제는 ‘인간의 생태학’이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해 요청된다고 말했다.
▲ 베를린의 독일의회에서 연설 중인 교황 베네딕토 16세.
▲ 교황이 23일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가 있던 건물을 방문해 독일 복음 교회의 수장인 니콜라우스 쉬나이더의 환영을 받고 있다. 마틴 루터는 이곳에서 1507년 가톨릭의 사제로 서품됐고, 1511년까지 수도원에서 생활했다.
한편 교황은 로마를 떠나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가진 회견을 통해 자신은 성직자들의 성추문 때문에 교회를 떠나야했던 독일의 가톨릭 신자들이 느낀 충격들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교회 안에서’ 이러한 범죄 행위들을 없애도록 애써줄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방문 기간 중 에르푸르트에서 성직자 성추행의 희생자 5명을 만나기도 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9월 22일 베를린에서 유다교 지도자들과 만나 선물을 교환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하느님께서는 점점 더 우리 인간 사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며 “과연 우리는 세속화의 압력에 굴복할 것인지, 신앙의 퇴색이 현대의 특징이 되고 말 것인지?”라고 물었다. 교황은 또한 일치운동을 일종의 타협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큰 우려를 표시했다. 교황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완전한 일치에 이르는 최선의 길은 오늘날 매우 자주 신앙에 적대적인 사회 안에서 용감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문 사흘째인 24일 교황은 동방교회 대표자들과의 만남에서 독일의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수정에서 자연사까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서의 혼인에 대해 어떤 종류의 잘못된 해석도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황은 에르푸르트와 프라이부르크에서의 신자들과의 만남에서 독일 가톨릭 신자들을 분열시켰던 논란의 주제들, 즉 여성 사제 서품, 사제 독신제,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교황은 복음을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 소명의 중요성을 선포하고 독일 성인들을 그리스도를 ‘극단적으로’ 수용했던 삶의 모범으로 제시했다.
전 동독의 도시였던 에르푸르트에서 교황은 미사 강론을 통해 나치즘과 공산주의는 그리스도교 교회와 신앙에 있어 마치 ‘산성비’와 같은 것이었다고 지목했다. 하지만 교황은 “당시 암울했던 시기의 억압과 고통들이 실제로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더욱 강건한 신앙, 오늘날 신앙인들이 누리는 신앙의 자유 아래에서보다도 오히려 더욱 강건한 신앙을 지니도록 해주었다”고 역설적으로 지적했다.
교황은 이어 프라이부르크에서 독일의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한 연설에서 독일교회는 분명히 ‘훌륭하게 조직화된’ 교회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교회의 구조 뒤에 과연 그에 상응하는 영적인 힘이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소공동체들은 사회 안에서 교회의 영향력을 새롭게 하는 가장 유망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교황은 프라이부르크에서의 미사에서 약 10만 명의 신자들에게 “신의 문제로 고심하는 불가지론자들은 신앙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형식적인’ 가톨릭 신자들보다도 오히려 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독일교회는 모든 이들이 함께 주교와 교황과 일치하여 각자 자신의 소명에 충실할 때에만 사회 안에 그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편 교황은 교회 기관들, 평신도 운동과 정치적 영역 안에서 활동하는 신자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교회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 안에 있는 ‘세속성을 벗어버리고’ 세속 사회의 기준에 적응하려는 경향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역사를 통해 볼 때 교회는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짐에서 자유로울 때 비로소 교회의 선교적 증거가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