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 걸었던 그 길 그대로
‘서산 아라메 십자가의 길’ 조성
‘순교로 향하는 그 걸음걸음을 묵상합니다.’
9월 25일,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서 해미성지(여숫골)에 이르는 ‘서산 아라메 도보순례 십자가의 길’. 어깨에 짊어진 커다란 십자가와 함께 순교를 의미하는 붉은 십자가가 맨 앞에 섰다.
그 뒤를 따르는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를 비롯한 사제단과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 중 시복대상자 132명, 신리와 면천고을 농바위 출신 무명 순교자, 포교와 포졸, 나장, 조선시대 평민 등으로 분한 신자(의정부교구 덕소본당)들의 얼굴에 엄숙함이 감돈다. ‘서산 아라메 도보순례 십자가의 길’은 해미성지에서 순교한 신앙 선조들이 걸었던 바로 그 길이다. 걷는 걸음마다 순교자들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9월 25일 대전교구 해미성지(전담 백성수 신부)가 순교자들의 믿음을 이어가고자 ‘서산 아라메 도보순례 십자가의 길’ 축복식과 순교자 현양 가장행렬을 열었다. 이번 행사는 9월 23~25일 ‘2011 해미 순교자 현양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이날 축복식을 가진 ‘서산 아라메 도보순례 십자가의 길’은 온갖 고초를 겪으며 순교의 길을 걸었던 신앙 선조들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됐다. 해미성지는 서산시의 지원과 함께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7월 해미읍성과 읍성 서문 밖, 해미면사무소 등 해미읍성에서 성지까지 약 1.5㎞ 거리의 읍내 곳곳에 십자가의 길 14처를 설치했다. 특히, 도심 내에 십자가의 길을 조성함으로써 해미 전역이 기도의 땅으로 인식되는 데 중요한 기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해미성지 담당 백성수 신부는 “이처럼 시내를 관통해 십자가의 길을 만든 곳은 ‘서산 아라메 도보순례 십자가의 길’이 유일하다”며 “이 기도의 길이 해미 전역으로 퍼져나가 해미가 기도의 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축복식 및 순교자 현양 가장행렬에 이은 순교자 현양미사는 유흥식 주교 주례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전례로 봉헌됐다.
유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해미성지는 많은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영광스럽게 목숨을 바친 하느님의 땅”이라며 “이런 뜻 깊은 곳에 기도의 길이 조성된 것은 하느님의 축복과 순교자들의 전구, 그리고 우리 순례자들의 끊임없는 기도의 결과”라고 전했다. 유 주교는 또 “우리도 신앙선조의 순교정신을 본받아 하느님과 내 이웃을 사랑하자”고 당부했다.
한편, 해미성지는 이번 순교자 현양 문화행사를 통해 백 신부와 상성규 화백이 참여한 서화전과 학생 사생대회 및 백일장(23일), 순례자 미사와 교구 대흥동본당 전 신자 순교자 현양 십자가의 길 기도 및 미사(24일)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우현 기자>
▲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를 비롯한 사제단과 신자들이 해미읍성에서 해미성지에 이르는 ‘서산 아라메 도보순례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
대전교구 황새바위성지(전담 최상순 신부)는 9월 24일 현지에서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사제단 및 신자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순교자 현양대회’를 가졌다.
‘나를 따라라(요한 21, 19)’를 주제로 마련된 이날 순교자 현양대회는 개회기도, 순교자 현양미사, 대지 및 순교자 명부 봉헌식, 성 김대건 안드레아 유해 및 황새바위 순교자 337위 명정행렬, 어울림 한마당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특히, 이날 순교자 현양대회에서는 많은 이들의 정성을 모아 매입한 대지를 비롯해 옛 문헌과 여러 증언록을 통해 새로 찾은 89위의 순교자를 포함한 337위의 황새바위 순교자들의 이름이 담긴 명부를 봉헌함으로써 순교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신자들의 마음을 한데 모았다.
아울러 미사 후 이어진 명정행렬은 공주 일대를 돌며 순교의 피로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순교 정신을 기리는 계기가 됐다.
유흥식 주교는 이날 미사에서 “황새바위의 역사는 순교 역사의 시작과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순교자들이 이곳 황새바위에서 순교하셨다”며 “순교자들이 순교의 십자가를 들고 예수님을 따랐듯이, 우리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순교의 뜻을 이어나가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이우현 기자>
■ 인천교구 시흥·안산지구
인천교구 시흥·안산지구(지구장 김동철 신부) 제1회 순교자 현양대회가 9월 25일 시흥시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를 주제로 묵주기도와 찬양, 성 김대건 신부 유해 이동, 미사 순으로 진행된 이날 순교자 현양대회에는 대부, 대야동, 도창동, 은행동, 신천동, 영흥, 포동 등 지구 7개 본당 사제단과 신자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사제단 입장과 함께 꽃가마에 모셔진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척추뼈) 이동은 처음으로 열린 시흥·안산지구 순교자 현양대회에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감돌게 했다.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제대 앞에 모시고 오용호 신부(은행동본당 주임) 주례, 지구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된 미사에서 오 신부는 인사말을 통해 “순교자성월을 맞아 지구의 많은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사를 드리고 나눔의 시간을 갖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부소장 조한건 신부는 강론을 맡아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과 박해의 과정을 설명하며 한국교회 초창기 신자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신부는 “과거 순교자들이 성경이나 교리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없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들은 교리서와 성경구절을 통째로 외우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로 신앙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또한 조 신부는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을 따라 살고 하느님을 따르지 않으면 살아도 살지 않는 것이다’라는 공통된 확신을 지녔다”는 말로 강론을 마무리했다.
<박지순 기자>
■ 수원교구
순교자 기리고 신심 고양하면서
성음악축제 등 풍성한 볼거리 제공
수원교구 수원대리구(대리구장 최재용 신부)가 주관하는 제12차 수원 순교자 현양대회가 25일 오전 10시~오후 4시 수원 화성행궁광장과 수원성지 대성전에서 열렸다.
수원대리구 신자들을 비롯, 수원교구 내 신자들과 타 교구 신자 등 8000여 명이 함께한 이번 현양대회에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22)’를 주제로 1부 시작기도와 순교특강, 2부 수원 순교자 현양미사, 3부 순교자 현양예절 등 순교자들의 정신을 묵상하고 본받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됐다.
묵주기도로 시작한 1부 행사는 김길수(사도요한·한국순교자 현양위원회 고문) 교수가 순교특강을 맡아 순교자를 현양하고 순교영성을 가슴 속에 받아들여 깨어있는 신앙인으로서 보편적인 그리스도교의 신심을 함양할 것을 강조했다.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는 현양미사 강론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교회가 한국교회를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복음을 찾아 나선 교회로 칭송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이런 선조의 정신과 신앙을 이어받아 순교의 길을 걷고 한국교회의 전통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24일 오후 7시에는 권선동성당에서 수원순교자 현양대회 전야 성음악 축제를 열어 성음악을 통해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순교자들의 얼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수원교구는 이밖에도 각 성지 및 지구에서 순교자 현양대회를 열어 교구민들의 순교자 현양 신심을 고양시켰다. 용인대리구 이천·동부지구 순교자 현양대회는 각각 17일 어농성지, 18일 양근성지에서 열렸으며 17일 남한산성성지, 24일 구산성지·수리산성지, 25일 죽산성지에서도 순교자현양대회가 열렸다.
<이승훈 기자>
▲ 25일 수원 화성행궁광장과 수원성지 대성전에서 열린 제12차 수원 순교자 현양대회에서 이성효 주교 주례로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제주교구는 9월 24일 오전 11시 대정성지에서 신앙의 증인 정난주(마리아, 1773~1838) 제주유배 210주년을 기리는 한국 순교자 현양대회를 거행했다.
제주교구 서부지구(지구장 이영조 신부) 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교구장 강우일 주교 주례의 기념미사, 축하연 순으로 진행됐다.
현양대회에 참례한 650여 명의 신자들은 1801년 신유박해 때 남편 황사영(알렉시오)이 ‘백서사건’으로 체포돼 11월 5일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으로 처형되자 두 살짜리 아들 경한을 추자도에 남겨둔 채 제주목 대정현에 유배돼 비록 관비의 몸이지만 38년 동안 신앙을 지키며 살다 세상을 떠난 정난주를 기렸다.
강우일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우리는 210년 전 제주로 유배돼 거룩한 삶을 살았던 정난주 묘역에서 이 땅에 신앙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쳤던 순교성인들을 기억하려 이 자리에 모였다”면서 “두 살짜리 아들 경한을 추자섬에 떼어 놓은 채 제주 대정현에서 귀양살이를 했지만 오로지 믿음 때문에 자기의 삶을 원망하지 않고 38년을 살아온 정난주의 신앙심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준 제주지사장>
▲ 9월 24일 오전 11시 대정성지에서 거행된 ‘한국 순교자 현양대회’에서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강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