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풍요로운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과 농부들이 남모르게 수고하며 흘린 땀의 고마움이 물씬 느껴집니다. 이런 마음으로 잘 익은 포도 한 송이를 입에 넣는 것을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포도밭 소작인 비유’에 등장하는 소작인들의 배은망덕함을 읽고 나서부터는 이러한 행복한 마음이 한방에 날라 갔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고, 정말 화가 났습니다.
포도밭 주인이 산등성이에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어 좋은 포도나무를 심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쉴 수 있는 공간도 정성 들여 만들어 놓고, 소작인들에게 이를 맡기고 떠납니다(이사 5,2). 이러한 주인의 정성을 볼 때, 그 주인이 포도 농사를 직접 지었다면 많은 결실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소작인들에게 맡겼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연중 제25주일에 묵상하였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 1-16)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마 포도밭 주인은 장터에 나와 일거리를 찾던 이들, 특히 오후 늦게까지 일거리를 찾지 못하던 사람들이 머리에 떠올랐을 것입니다. 포도밭 주인은 일일 품팔이를 하는 이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자신이 정성을 다해 가꾼 포도밭을 그들에게 맡기고 떠납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주인이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종들을 보냈을 때, 그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합니다. 포도밭 주인은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냅니다. 하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합니다. 포도밭 주인은 너무나 화가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참고 자신의 아들을 보냅니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소작인들을 그 아들을 보자 그들의 더러운 본심(本心)을 드러냅니다.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라고 하며 그 아들을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립니다. 얼마나 통탄할 일입니까? “그분께서는 공정을 바라셨는데 피 흘림이 웬 말이냐?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 말이냐?”(이사 5, 7)라고 울부짖는 이사야 예언자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소작인들은 포도밭 주인이 베푼 사랑과 은혜도 저버렸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지켜야 할 공정과 정의도 내동댕이쳤고, 자비로움을 피눈물로 갚은 배은망덕 그 자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주인의 아들, 곧 상속자를 죽임으로써 대를 이어 농사지을 수 있는 일터마저 빼앗긴 어리석은 소작인들. 땅 욕심에, 재산 욕심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소작인들은 그토록 바라던 포도밭(하느님 나라)에서 쫓겨나, 결국 ‘돌 위에 떨어져 부서지고, 돌에 맞아 으스러지는 불쌍한 자’가 됩니다.
이 비유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아주 무겁고 답답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이 비유 말씀 뒤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라는 시편을 덧붙인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집 짓는 이’와 ‘소작인’의 차이가 무엇일까를 한참을 생각하다가, 집 짓는 이들과 소작인은 상징적으로 자기의 편안만을 추구하는 사람, 자기 욕심을 채우는 사람, 자기 아성(牙城)을 쌓는 사람, 남의 집을 짓는 사람, 불의와 부정의 집을 짓는 사람, 죄를 짓는 사람, 소탐대실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내버린 돌’과 ‘죽여버린 상속자’는 고마움과 감사함, 은혜로움과 자비로움, 겸손함과 온유함, 공정과 정의, 행복과 기쁨, 은총과 구원, 사랑과 평화를 내버리고 죽여 버린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불의하고 부정한 소작인들이 저버리고 내동댕이친 고마움과 감사함, 은혜로움과 자비로움, 겸손함과 온유함, 공정과 정의, 행복과 기쁨, 사랑과 평화 등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아 당신의 집(하느님 나라)을 짓고 싶어하심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퉁이의 머릿돌을 기초로 삼아 짓는 집이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하며 자랑스러울지 생각하니, 어느덧 하느님께서 이룩하시는 풍요로움이 놀랍게만 다가옵니다. 이 풍요로움을 간직하며 여러분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깨닫고 기도하고 나니, 이제 다시 포도 한 송이가 먹고 싶어집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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