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천주교회가 들어오기 전부터 창립선조 가운데 한 명인 이승훈 선조가 북경에서 1784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천주교와 인연을 맺은 선조들 가운데는 이수광, 소현세자, 허균 등의 이름들도 있습니다.
먼저 이수광은 호가 지봉으로, 지봉유설이라는 책을 쓴 유명한 분입니다. 그분은 348종이나 되는 중국 책들의 목록과 내용을 소개하였는데, 그 가운데 마태오 리치 신부님이 쓰신 천주실의라는 책도 있습니다. 이수광이라는 학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님에도 1603년, 북경판 천주실의 등 여러 가지 종교서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청나라에 우리나라가 항복을 하고 볼모로 심양에 보낸 왕세자, 소현세자의 경우도 있습니다. 소현세자는 심양에서 북경으로 가서 6개월 정도 그곳에 머물렀는데, 아담 샬 신부를 만나 천주교에 관계된 것들과 천문학 등을 알게 됐습니다.
허균은 홍길동전을 쓴 유명한 학자입니다. 그는 1614년, 1616년 두 번 중국에 다녀왔는데 기록 중에 은 1만5000냥을 가져가서 4000권의 책을 북경에서 사서 들어왔다는 글귀가 있습니다. 그때 그가 들여온 것은 서양의 종교서적과 학술서적을 한자로 번역한 한역서학서와 지도 등입니다.
허균은 홍길동전을 쓰면서 우리나라의 계급제도를 고발하고 그 가운데 오는 어려움을 타파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러한 생각은 천주교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도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분인데, 강진에서 유배를 사시면서 우리나라 사회의 개혁을 위해 많은 책을 쓰셨습니다. 이러한 사실도 허균이 시발점이 됐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우리 교회사는 허균을 완전히 천주교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고 여러 가지로 허균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이수광은 허균의 손윗동서로서 ‘천주교인이 생긴 것은 허균의 영향 때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안정복도 천주교를 하늘의 학설이라고 말했으며, 박지원도 허균을 최초의 천주교인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요즘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종’이란 표현은 교회법적 용어로 시복대상에 오른 분을 가리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103위 성인을 모시고 있지만 앞으로 이분들이 시복시성이 되신다면 그분들의 삶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이분들이 시복시성 되고, 되지 않고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들을 보며 우리 신앙인들이 ‘선조들이 어떻게 사셨나’ 기도하고, 생각하고, 닮아가고자 할 때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곳에 하느님의 종을 닮고자 오신 것이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는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종 명단 첫 자리를 차지하는 윤지충은 정약용을 찾아가 천주실의와 칠극을 보고 필사를 하며 자신의 신앙을 깊게 하고, 사촌이었던 권상연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도 신앙을 갖게 합니다.
정약종 순교자는 한글로 되어있는 주교요지를 만들어 초창기 신자들이 교리서를 읽고 배울 수 있게 했으며, 강완숙은 여성공동체를 만들어 꾸리며 성직자 영입운동에 있어 경제적 뒷바라지를 합니다.
또 윤유일, 최인길, 지황 등 세 분은 주문모 신부를 모시고 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들이며, 주문모 신부는 조선에 와 여회장과 동정녀 공동체를 만드는 등 여성신자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신 분입니다. 수도회가 진출하기 전, 한국에는 여성들이 수도자처럼 결혼하지 않고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순교에 앞장서고 이웃을 도우며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최경환 성인을 보면 항상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다니고는 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종을 닮아 신앙생활을 위해 ‘찾아다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곳에 오신 것도 큰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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