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막연설: 제주 강정에서 시작하는 아시아의 평화
-강우일 주교(주교회의 의장·제주교구장·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장)
“현실과 유리된 신학은 언어 유희”
▲ 강우일 주교
제주도민은 현대 역사의 굴레 속에서 큰 아픔을 겪었다. 해방공간에서 당시 한반도는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간 심각한 이념 갈등을 겪었다.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는 그해 11월 17일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대적 토벌작전을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중산간 마을 95%가 불타고 수많은 인명이 살상됐다.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 9월 21일까지 6년 반 동안 제주도민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제주도민 전체의 10%가 넘는 희생이었다. 국가 공권력이 민간인들을 정당한 조사와 재판절차 없이 무차별 학살한 ‘제노사이드’에 준하는 범죄적 사건이었다. 억울하게 피 흘린 제주 땅에 가해자들의 정당한 속죄와 피해자들의 합당한 치유 과정도 생략된 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한민국 정부는 다시 군대를 파견하여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의 토지를 강제 수용하고 군사기지를 건설하려고 한다. 이런 탈역사적 행위는 4·3희생자들의 희생을 무의미한 죽음으로 만들고, 과거의 반인륜적인 범죄를 망각의 무덤 속에 은폐하는 부끄러운 행위다.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을 자행해온 것은 국가들이었다.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 학살도 나치 제국의 국가 공권력이 한 일이었고, 중국 남경에서 30만 명의 인명을 잔혹하게 학살한 것도 일본 제국주의 국가 공권력이 한 일이며, 6·25 한국전쟁 당시 남북 양쪽 군대가 저지른 수많은 양민 학살도 모두 국가 공권력이 저지른 사건들이었다. 국가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도 인간의 기본권을 훼손하고 신앙의 진리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거부하고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선포하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하느님의 초월적이고 추상적인 진리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의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계명과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신학은 오늘의 현실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백성이 알아듣게 전하는 말이 돼야 한다. 현실과 유리된 신학은 언어의 현란한 유희가 될 수밖에 없다.
아시아 대륙은 많은 가난한 이들의 고뇌와 좌절과 아픔에 찌들어 있다. 국제사회의 의롭지 못한 구조와 억압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신음하며 눈물짓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건너뛰어서 우리는 신학을 논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제주도에서 가장 작은 마을, 강정의 평화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작은 마을의 평화를 지키지 못하면 아시아의 평화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 기조발제1: 세계화의 도전 속 아시아 신학의 미래
-펠릭스 윌프레드 신부(전 FABC 신학사무국 총무)
“현대신학, 공적기능 수반해야”
아시아 신학의 미래는 공공신학이라 할 수 있다. 다문화 다종교 사회인 아시아에는 보다 친교성과 포용성이 강화된 공동체 건설이 필요하다. 주요 현안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공신학의 공적기능은 가톨릭 신앙의 진정성과 정체성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공공신학은 전통 신학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다. 공공신학은 ‘가톨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보다 더 확장된 영역에서 그 자체의 과학적 학문성을 획득하게 된다.
현대 신학은 공공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사회는 국경과 종교를 넘어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공동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공신학은 인류의 삶을 개선하고, 인류의 삶을 지지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런 관점은 신학을 추구하는 방법론이나 근원론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아시아의 공공신학은 서구 사회에서 신학이 종교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작용했던 역할과는 다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와 서구사회의 공공신학 간 대화와 교류는 여전히 필요하다.
아시아의 공공신학은 이제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구사회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다문화 다종교 사회인 아시아에서의 신학은 보편교회의 역할에 대한 깊은 반성을 통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세계화, 신자유주의 그리고 아시아 교회-프라카쉬 루이스 신부(인도 비하르 사회연구소 소장)
교회 역시 세계화된 하나의 거대한 기관이다. 교회는 세계적이면서 동시에 지역적이기 때문에 국제연대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신학교 중심의 신학이 아닌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신학의 가능성도 갖고 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비현실적인 신보수주의가 등장하고, 지역 사회 안에서 게토화될 위험이 있으며, 성직주의로 인해 사제가 사라질 경우 그 공백을 메워줄 평신도 리더십이 부족하다.
교회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 다음과 같이 응답해야 한다. 교회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과정과 결과, 다양한 영향력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통찰해야 한다. 또한 이런 세계화나 신자유주의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규명하고, 억압받고 있는 공동체와 연대해 신앙에 기반한 구체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 발달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이상적인 방법론을 찾기 위한 전 세계적인 공동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서구적 관점에서 본 아시아 신학-가스파 마티네즈(전 ICMICA 지도신부·스페인 드수토대학 교수)
서구사회의 신학, 즉 정치신학 해방신학 공공신학은 칼 라너, 버나드 로너간, 프랑스 누벨 신학자들이 세운 가톨릭 전통 신학의 재해석에 기반하고 있다. 구체적인 양상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아시아 신학에서도 서구사회의 정치 해방 공공신학과의 연관성이 엿보인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신학적 시도의 맥락이 유사하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시아 신학은 해방신학 중심이었다. 아시아 신학은 종교의 구원적인 역할을 보다 더 다원론적인 입장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초점을 맞춰온 것 같다. 더 많은 지혜와 정의, 평화를 요구하고 있는 현 시대에, 아시아 신학은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유도하면서 교회의 맥박을 새롭게 뛰게 할 새로운 신학이다.
■ 기조발제2: 종교간 대화 신학의 성취와 전망
-아로키 아사미 신부
“대화·소통 통한 연대 강화 필요”
교회는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또한 종교간 세계간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있다. FABC 역시 아시아 교회 내에서의 선교 방법과 교회의 방향성에 대한 대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FABC가 강조하고 있는 신학적 대화란 단순히 신학에 대한 기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관계라는 실제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복음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와 소통이다. 선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복음적 가치와 아시아 대륙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역사, 문화, 종교적 전통 간의 접점을 찾는데 주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타 신앙이나 정신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또 신학적 대화 속에 담긴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그 결과를 심화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를 갖추는데 주력해야 한다. 대화는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증진시키고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아시아교회는 신학적 대화와 소통을 더욱 강화하고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아시아 대화신학에 대한 한국의 응답-에이몬 아담스 신부
종교간 활발한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대화의 기본 요소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우선 타종교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용어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각 종교 대표자들이 모여 대화하는 기회를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종교간 친교나 협력은 잘 이뤄지고 있는 편이나, 종교간 대화는 부족해 보인다. 각 종교의 전통과 관련한 깊이 있는 대화와 논쟁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아시아 신학과 중국교회-장웬시 신부
중국인들에게 그리스도론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을 알기 위해선 중국인들의 실제적인 삶과 전통 문화에 대한 분석이 우선시돼야 한다.
중국에서는 문화와 종교가 확실히 분리되지 않은 채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현재 중국 사회 내 빈부격차가 극심하다. 또 시골에는 여전히 전통의 삶이 많이 남아있는 반면, 도시에는 현대적 시스템이 급속도로 도입되고 있다.
경제발전은 부조리, 부패, 성차별, 자살 등 여러 문제점을 동반하고 있지만 중국교회는 이러한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현실에 성경 신학을 반영한 그리스도론이 필요하다.
중국에서의 선교는 중국인들이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전개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 기조발제3: 세계화와 인간발전
-데스몬드 드 수자 신부(고아 이주노동자포럼 코디네이터)
“여성 지도자 양성에 투자를”
살아온 경험은 때때로 시각이나 어떤 진실에 대한 자세를 결정한다. 아시아교회 사목은 유럽 중심적 시각에 맞춰 만들어져왔다. 그 시기 교회경영모델이 자주 가져왔던 유럽인의 식민지화에 의해 습관화된 것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식민지 정신에서 지역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그들의 삶 안에 하느님께서 이미 일하시고 있다는 보다 큰 평가로 패러다임이 변화했다.
따라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는 첫 총회(타이, 1974)에서 아시아교회의 선교에 있어 유럽중심에서 아시아의 시각으로 변화한 패러다임을 역설했다. 현대 아시아 교회가 새로운 아시아 교회를 위한 노력에 참가하는 도전을 움켜쥘 것인가 뒤처질 것인가? 이것은 오늘날 아시아교회의 도전이다.
#이주민과 인간발전-니티야 신부(FABC-OHD 총무)
우리가 사람이나 사회의 발전을 말할 때, 우리는 그들의 시민·정치 권리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양상을 통한 개인과 사회의 복지에 중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이주민은 지역 경제와 지역 정부에 기여하고 그의 가족과 함께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주민의 인간발달 지표는 보호받을 권리와 경제·사회·문화 권리와 마찬가지로 시민·정치 권리를 수행하는 데 있다. 국제 노동 이주는 국가에 큰 영향을 주며, 국제 지역 및 국가 정책 의제에서 주요 글로벌 이슈로서 높은 순위로 부각된다. 사회 옹호를 위한 아시아 협회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제시된 이민자와 원주민에 대한 사회사목 옹호를 위한 구체적인 제안은 이 관심에 부응할 수 있는 교회를 위한 훌륭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아시아 여성과 인간발전-김숙희 수녀(성심수녀회·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총무)
2001년 김대중 정부는 가부장 가족 제도의 폐지, 출산 휴가의 연장, 여성 차별에 관한 법령의 제정 등 많은 중요한 사회적 업적을 이뤘다. 특히 의회에서 여성할당제를 도입, 리더십과 능력을 보여주는 여성을 발굴했다. 같은 이유로 한국교회에 여성할당제를 제안하고 싶다. 가톨릭 신자의 70% 이상을 여성이 차지하지만, 본당과 교구의 의사 결정에는 소수의 여성만이 참여하고 있다. 더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기구들에서 대표하게 될 때 리더십을 발휘하는 많은 여성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여성 지도자 형성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