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은 11월 10일 서울에서 「2001 사형폐지 아시아 포럼 - 서울」을 공동으로 개최하고 전 세계,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정부를 향해 사형제도를 폐지할 것을 촉구했다. 포럼에서 발표된 사형제도의 세계적 추세 및 아시아 각국 현황, 기조연설 요지, 전 사형수 체험담, 공동 선언문 등을 모았다.
▣사형제도의 세계적 추세 및 아시아 각국 현황
이번 포럼에는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7개국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엠네스티 국제 사무국에서도 대표를 파견했다. 이들은 현재 전 세계의 사형제도 실시 현황과 아시아 각 국에서의 사형제도 현황에 대해 자세하게 보고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한 내용이다.
109개 나라가 폐지
▨ 엠네스티 국제사무국 대표 - 엘리자베스 로프그렘
최근까지 108개 국이었으나 또 한 나라가 추가돼 현재 사형제도 폐지국가는 모두 109개 국으로 늘었다. 이런 추세는 긍정적이지만 완전 폐지까지는 아직도 길이 멀다. 지난해에만 27개 국에서 1457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 전해에는 65개국에서 3058명이 집행됐다.
사형이 범죄를 억제하지는 않는다. 사형제도는 보복의 도구이다. '눈에는 눈으로' 보복한다면 전 세계가 눈이 멀 것이다. 특히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된 사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1973년 이후 98명이 석방됐다. 금년에는 12명이 무죄로 판명됐다.
국제법적으로도 사형은 불법이다. 많은 나라에서 범죄에 대한 대응으로 사형제도를 실시하는데 이는 인권과 연관된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의 생명권을 강조하고 있다. 유엔은 결의안을 통해 사형 금지를 결의한 적이 있다.
유럽과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도 사형폐지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중동, 북아프리카, 미국 등에서는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 중국, 미국, 이란 등의 사형 선고는 전 세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중국은 지난 4월부터 7월 사이에 1781명 이상을 사형시켰다. 유럽의 경우 EU 회원국이 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가 사형 폐지이다. 사형제도가 있는 미국과 일본은 옵서버 자격을 박탈당할 처지이다.
지난해 12월 18일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300만명이 서명한 폐지청원서를 제출하면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도 변화를 기대한다. 미국에서도 사형폐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분명히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예외적인 처벌 행위
▨ 인도 - S. 무랄리다 변호사
인도는 사형 존치 국가이다. 아직도 11개 범죄에 사형이 적용되고 있으며 마약, 테러 등에 대해서 특별법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보복에서 교화에 바탕을 둔 이론으로 바뀌고 있다. 사형은 이제 아주 예외적인 처벌 행위이며 많은 사람들이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1993년 인권위원회가 설치됐는데 여기서 사형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당파초월 의원조직 구성
▨ 일본 - 기쿠다 고이치 교수
일본은 잠깐 사형을 집행하지 않다가 1993년 다시 재개됐다. 1994년 100여명의 의원들이 사형제에 반대하는 의원연맹을 결성, 한때 190명까지 회원이 늘었으나 지금은 76명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최근 총회를 개최하고 당파를 초월해 새로운 조직을 구성했다. 연맹은 법무대신 교체 때마다 직접 접견해 집행하지 말것을 호소하고 집행되면 강력히 항의한다.
폐지 쪽으로 가고 있어
▨ 몽고 - 바트도르 알탄투야
사형선고는 줄어드는 추세이다. 1993년 형법은 60세 이상, 18세 이하는 사형 선고를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형을 폐지하면 범죄가 증가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해가 높아졌다. 여전히 사형은 있다. 1999년에는 24명, 2000년에는 13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매년 줄어드는 추세이며 이제 폐지 쪽으로 가고 있다.
2004년내 폐지할 예정
▨ 대만 - 린 메이 융
대만 총통이 새로 취임하면서 ▲국제인권법안 채택 ▲국가 인권위원회 설치 ▲국제 NGO와 협력 등을 내세웠다. 교황이 사형폐지 촉구 서한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그 뒤 대만 추기경과 법무장관이 2004년까지 폐지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사형폐지와 관련된 법안이 제출되어 있으며, 폐지 전 단계로 사형선고와 집행을 줄이고 종신형 등 다양한 대안을 논의하고 있다.
마약밀매 억제 증거없어
▨ 태국 - 롭 스튜어트
1935년 사형 도입 후 303명이 사형됐다. 90년부터 95년까지는 집행이 없었는데 96년 30명이 집행됐다. 현재 300여명이 사형수로 있는데 180명 이상이 마약 사범이다. 그러나 사형제도가 마약 밀매를 억제한다는 증거가 없다. 마약문제가 심각해 폐지 논의에 어려움이 많다. 여러 나라의 연대가 절실하다.
41명이나 무죄로 판명
▨ 필리핀 - 제시카 소타
1987년 사형제도가 폐지될뻔 했다. 잠깐 폐지됐다가 1993년 폭력 범죄 증가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을 이유로 다시 도입됐다. 오늘날 1천명 이상의 사형수가 존재한다. 200여명이 항소 중이고 41명은 무죄로 판명됐다. 많은 사람들이 과연 재판이 공정한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 기조연설 요지
“중국 북한 대표도 동참 호소”
아시아에도 사형을 폐지할 시기가 됐다. 어떤 국가나 정부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다. 사형은 법의 이름을 빌린 또 하나의 살인행위이다. 사형은 정치적 반대자나 민족, 종교, 그리고 차별되어 학대받는 사람들에 대한 억압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사형으로 범죄가 억지되는 것도 아니다.
유교의 근본 사상인 성선설은 원래 사람은 착하지만 살아가면서 때가 묻어 범죄를 저지른다고 본다. 회개 가능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제도는 그 존재 의의가 없기에 유교와 사형 폐지와의 관계는 긍정적인 연관을 갖게 될 것이다.
아시아권과 미국에서는 사형제도 폐지의 속도가 느리고 비관적이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집권이래 지금까지 사형 집행이 되지 않고 있다. 이에 머물지 않고 완전 폐지로 나아가야 한다. 다행히 11월 현재 한국 국회의원 재적 271명의 과반수가 넘는 155명의 찬동으로 국회에 상정, 통과시키려 전력을 다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사형폐지가 부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시아는 하나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사회적, 문화적 기반의 동질성을 뜻한다. 반면에 아시아는 다양성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어려움이다.
그러나 유교의 인(仁)과 덕(德), 불교의 '자비심',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모두 공통성이 있으며 이는 사형폐지운동이 갖는 도덕성 회복 운동이라는 측면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측면에 따라 아시아 여러 나라가 합심해 사형폐지운동을 추진한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아시아에서도 사형제도가 전면적으로 폐지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시아에서의 사형폐지는 세계 사형폐지운동의 귀결점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염원을 이룩하기 위해 중국과 북한 대표의 동참을 호소하며 이에 대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각별한 지원을 부탁한다.
이상혁 한국사형폐지협의회장
▣사형수 체험담
“34년 복역후 무죄로 밝혀져”
억울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34년 동안 교도소에 있다가 1983년 사회로 복귀했다. 1948년 12월 29일 구마모토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1949년 1월 연행됐다. 잠도 못 자고 식사도 못한 상태에서 폭력으로 거짓 증언을 하도록 했다.
강도살인의 죄명으로 1951년 12월 25일 사형을 확정 받았다. 법률에 무지한 시골 젊은이였던 나는 구치소 독방에서 교도관의 엄한 감시 아래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한 사형수가 책임자에게 부탁해서 '교화'에 참석하도록 해주었다. 데로리라는 이름의 캐나다 신부가 사형수에게도 재심청구가 가능하다는 말을 해주었고 그때야 재심절차를 알게 된 나는 청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유없다'는 한마디로 기각했다. 끈기 있게 재심청구를 계속해 여섯 번째 청구 끝에 1979년 9월 후쿠오카 고등법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교도소에 있던 중 수십 명의 사형수가 형장으로 가는 길에 식기를 차입하는 작은 구멍으로 이별의 악수를 나눴다. 모든 사형수가 확정 판결에 불복하고 재심 또는 사면을 청구했지만 법원이나 법무부는 형식적으로 기각하고 처형해버렸다.
재심으로 무죄가 됐지만 일본 법률에 따르면 확정 판결은 취소되지 않고 따라서 무죄가 판명되어도 석방해야 한다는 법조문이 없다. 그래서 법적으로는 사형수이면서도 일반인과 똑같은 생활을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물론 나는 연금도 지급 받지 못하고 국가가 책임을 시인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재판한다는 것의 문제점을 호소하고 나와 똑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또 일본에서 그리고 지구상에서 사형이라는 형벌이 없어질 것을 기원하면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인 멘다 사카에
▣ 공동 선언문 전문
“아시아 각국 사형제도 폐지 강력히 촉구”
우리는 새 천년의 시작이 '테러와 그 보복으로서의 전쟁이라는 참담한 현상을 지켜보면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한다. 보복은 보다 더 큰 보복을 부를 뿐이고, 용서와 화해만이 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생명권에 대한 제도적 보복일 뿐이다. 사형이 범죄를 억제한다는 미신은 증명되지도 않았고 증명될 수도 없는데 만연히 국가는 마녀 사냥을 계속하고 있다. 사형의 폐지는 부인할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아시아만이 그 큰 물결과 흐름을 외면하고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사형제도는 자연과 인간이 공생해온 아시아 각국의 문화에 반하는 행위이다. 사형의 폐지는 결코 한 국가의 국내 문제에 의해 판단할 문제가 아니며, 지구 공동체의 모든 인류가 추구해야 할 공동과제이다. 사형의 폐지는 세계의 전반적 추세이며 이는 반드시 성취해야 할 당연한 목표이다.
아시아 각국은 사형집행을 즉시 정지하고 사형을 제도적으로 폐지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문화를 만드는데에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 아시아의 사형폐지 활동가와 사형폐지를 기원하는 시민, NGO, 종교단체들은 2001년 11월 10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제2회 아시아 사형폐지 포럼에 참가하고 다음과 같이 공동결의한다.
하나, 우리는 아시아 각국 정부가 사형수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고 적절한 접견 교통권을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하나, 우리는 아시아 각국이 국제연합사형폐지조약을 비준하여 국내법화할 것을 촉구하며 그 시기까지 사형수에 대한 집행을 정지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 우리는 아시아 각국이 위 조치를 취하는지 여부를 면밀히 감시하기 위하여 상호 협조할 것이며, 국제 기구 및 전세계의 NGO와도 연대할 것을 결의한다.
하나, 우리는 아시아 각국이 하루빨리 사형제도가 폐지되기를 강력히 촉구하며 범죄의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를 권고한다.
하나, 우리는 한국이 사형폐지를 향하여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점에 경의를 표하며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과 대한민국 국회가 하루빨리 사형폐지를 결단하도록 강력히 요구하고 기대한다.
하나, 우리는 2003년에 제3차 사형폐지 아시아 포럼이 개최되는 것을 결의한다.
2001년 11월 10일 '2001 사형폐지 아시아 포럼 -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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