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늘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죽으면 슬퍼해 주는 곳,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수원교구의 전 교구장이셨던 고(故) 김남수 안젤로 주교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씀이 견진성사 때면 늘 ‘자녀 하나 더 낳으라’는 말이다. 점점 줄어드는 출산율 때문에 감소일로에 놓이게 될 성소자들을 내다보며 자식 하나 더 낳아 신학교나 수녀원에 보내자고 목소리를 높이셨던 주교님의 걱정은 요즘 점차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출산율의 감소와 함께 점점 성소자들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 교육을 실시할 때마다 ‘몇 명의 자녀를 갖고 싶으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다수 예비부부들은 한 명 내지는 두 명을 원하고 있고 가끔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대답도 듣게 된다.
자녀란 누구인가?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을 이어가는 숭고한 생명으로, 인간존재가 지속되는 창조사업의 계승이 자녀다. 자녀는 부부의 사랑이 새로운 열매로 맺어지는,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인간역사의 계승이며 하느님 구원사업의 증인으로 인간에게 주어지는 은총과 사랑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 내일에 대한 희망과 존재론적 가치보다 오늘의 현세적 쾌락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의 경향은 결혼의 가치가 별 의미 없듯, 자식에 대한 존재 자체도 망각하고 싶은 모양이다.
사실 가족계획이란 자녀의 수를 줄이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가족 계획(family planning)이란 글자 그대로 가족의 수(數)에 있어서 그 가정의 경제성과 어머니의 건강문제나 나아가 부모의 정신위생면에 비추어 보아 가장 알맞은 수의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을 말한다. 또한 가정의 모든 조건이 좋아도 자녀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불임의 원인을 밝혀서 치료함으로써 원하는 자녀를 갖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 가정에 따라 건강하게 자녀를 출산하도록 준비한다는 가족계획은 결국 자녀의 수를 줄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자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빈틈없이 준비했던 피임의 실패, 계획하지 않는 임신, 낙태로 점점 늘어나는 버려지는 생명들, 급기야 임신된 아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등장하는 낙태약 시판에 대한 허용의 목소리,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개인적인 가치관과 이기적인 경제논리 속에 수많은 어린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렇게 생명을 더 이상의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세태(世態)에 누군가는 ‘그만’이라고 외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보지만, 신부의 빈약한 논리로 태산처럼 밀려오는 저 거센 파도를 어찌 막아야 하는지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결혼을 하고도 자녀의 존재로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의 이기적이고 편의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사라지는 어린 생명들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오로지 맏이들로만 가득한 세상에서 욕심만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형제간의 우애와 사랑, 그리고 이해와 양보 속에 희생을 배우는 건강하고 풍요로운 가정이 되도록 깨우쳐야 한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내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 10)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셋째를 위해 작은 교회인 가정이 ‘생명의 성역’으로 제 모습을 찾도록 교회가 나서야 한다.
가정/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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