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성지 마당에서 수녀님들과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아련한 수녀님에 대한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그 수녀님은 행려 환우들이나 생활보호대상자 환우들이 입원하던 병원에서 묵묵히, 그러나 기쁘게 병원 소임을 다하셨습니다.
그 병원에 입원하신 분들의 종교 여부에 관계없이 행려환자들에게는 그 환자가 과거 어떠한 삶을 살았던지 간에 세상에는 그래도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시 토요일 특전미사 때는 정성껏 미사를 준비하셨고, 미사 후에는 봉성체를 원하는 환우들의 병실을 미리 체크해 놓으셔서 성체를 영할 준비도 시켜 주셨고, 병원 안에서 수녀님을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는 ‘주님, 그분이 우리의 기쁨’인 것을 보여 주시며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저는 갓 서품을 받고 마음이 들떠 살았을 때도 매주 토요일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병원미사를 도와주러 갔습니다. 새 신부의 마음에는 꽤 멋진 성당에서 폼 나게 미사를 봉헌하고 싶은 마음이 클 때였지만, 병원 내 작은 공간을 빌려 어려운 환자들과 미사를 준비하시는 수녀님을 보면서 마음의 거품이 빠지곤 했습니다.
수녀님이 하시는 것을 흉내 내듯이 가족 없이 쓸쓸히 임종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드렸고, 누워계신 환우들을 위해서 정성껏 봉성체를 해드렸습니다. 정말 철없던 그 시절, 사람들로부터 ‘내가 신부라는 사실’만으로도 인정받고 싶었고 작은 희생도 크게 부풀려 괜찮은 사람임을 확인받고 싶었지만, 그런 내 마음을 바로잡아 준 것은 수녀님이 보여주신 열정과 사랑,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온전한 희생이었습니다. 미사를 도와드리러 갈 때마다 영적으로 조금씩 건강한 사람이 되어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오던 그때 그 시절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날, 두 분 수녀님을 지하철역에 모셔드린 후, 하루 종일 가슴이 아픈 건지 아니면 쓰린 건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방으로 돌아온 저는 갓 사제서품을 받았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혼자 눈물짓기도 하고 웃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십년이 훨씬 지난 후 그날 만나 뵌 그 수녀님을 통해서 십 년 전 생생하게 간직했던 저의 다짐들, 즉 가난하고 겸손하고 참 착한 수도사제로 살겠다는 마음이 기억 속 여기저기에서 되살아났습니다.
한 분의 수녀님 모습이 맑은 거울이 되어 지금 현재의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문득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때처럼 성실하게 살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제가 요즘 기본에서, 근본에서 좀 멀어져서 그러한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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