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신도시가 건설되면서 교구의 행보도 바빠진다. 당시 분당지역에 인구증가와 교세확장이 폭발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1993년 1월 7일 교구가 분당본당을 신설하게 된 것이다.
분당본당의 관할구역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전지역과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일부지역, 신자수는 1316세대, 4844명이었다. 분당본당 신설로 인해 당시 교구의 본당 수는 70개가 됐다.
가톨릭신문은 1993년 1월 17일자에 ‘수원교구 분당본당 신설’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싣고 신설된 분당본당 초대주임에 성빈센트병원 원목 김영배 신부가 임명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당시 분당본당은 임시본당으로서 사무실을 성남시 분당구 초림동 양지마을 금호아파트 115동 401호로 사용해야만 했다. 신자들은 이후에도 토요특전과 주일미사를 서현초등학교 시청각실에서 봉헌하며 힘겨운 신앙생활을 하다가 개신교의 반발과 민원제출로 그마저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가톨릭신문은 “신설 3개월 만에 신자 수 7000여 명의 초대형교회로서 성장하고 있는 분당본당은 현재 전체신자가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오는 9월 성전기공식 후 성탄미사는 신축성당 지하에서만이라도 봉헌할 수 있도록 하자는데 뜻을 모으고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범적인 본당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분당본당 신자들은 미사봉헌을 허락한 인근 성남동본당을 위해 성당 청소를 자원하기도 했으며, 4월 11일 부활대축일 미사를 성남실내체육관에서 전 신자가 한데 모여 봉헌하면서 감격의 시간을 보냈다. 미사를 봉헌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 성당 부지 인근에서 미사를 하기도 했던 이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국내 단일규모 최대성전이라는 분당본당의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본당공동체가 한데 뭉쳐 다사다난한 역사의 시간을 보냈던 분당본당은 분당성요한본당으로 탈바꿈하며 설립된 지 1년만인 1994년 1월 기공식을 가졌고, 성마태오본당과 성마르코본당 등 여러 본당을 분가시키며 분당지역의 복음화와 화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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