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자간의 언어
충남 논산의 황요한씨. 일 때문에 이리 저리 뛰어다니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막차 시간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시장기에 이끌려 인근 식당에 들어갔는데 아뿔싸 잔돈까지 모아봐도 차비 밖에 없는 게 아닌가. 고민하다 일단 하루종일 굶은 탓에 몰려온 시장기부터 해결해야겠다 싶어 식사를 주문했다.
그리고 뒷일을 걱정하면서 십자성호를 긋고 식사전 기도를 바치고 나서 식사를 하는데 밥 맛이 영 개운치 않다.
그런데 갑자기 「형제님」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한 신사분이 『천주교 신자시죠. 반갑습니다』하며 반갑게 악수를 청하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얼떨결에 악수를 하고 나서 식사를 계속하면서 십자성호 긋는 모습을 보았구나 짐작했지만 생각은 식사비 걱정에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주인에게 통사정 해 볼 요량으로 머뭇거리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했던지 주인이 먼저 『아까 먼저 나가신 친구 분이 식사비를 함께 계산하셨는데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요한씨는 『주님 감사합니다』하며 십자성호를 그었다.
#2. 깨어진 독배
베네딕도 성인이 이탈리아 수비아코 근처의 비코바로라는 수도원에 살 때의 일이다.
그곳 수도원장이 선종하여 수사들이 베네딕도 성인을 새원장으로 모시기를 원했지만 성인은 자신의 규칙과 그 수도원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너무 달라 번번히 거절했으나 간곡한 애원에 못이겨 그들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규칙없이 마음대로 생활해온 수사들에게 엄격한 규칙을 강조하며 고행의 생활을 요구하는 베네딕도의 방식이 수사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베네딕도를 수도원장으로 모신 것을 후회하기 시작한 수사들은 마침내 베네딕도 성인을 없애기로 마음먹고 성인이 마실 포도주 잔에다 몰래 독약을 넣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베네딕도 성인은 포도주를 먹기 전에 여느 때처럼 십자성호를 그었다. 이때 큰 돌이 유리잔을 내리치듯 포도주가 담긴 잔이 내동댕이 쳐지며 깨어지고 말았다.
베네딕도 성인은 주님의 십자가에 대한 깊은 신심을 지니고 있어 십자성호를 그음으로써 많은 기적들을 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십자성호의 역사와 의미
초대교회 문헌들을 읽으면 그리스도인들이 간단한 십자성호를 긋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떼르뚤리아누스는 『여행하거나 어디를 갈 때, 집 안에 들어오거나 밖으로 나갈 때, 신을 신을 때, 목욕을 할 때, 음식을 먹을 때, 촛불을 켤 때, 잠들 때, 앉아 있을 때, 무슨 일을 할 때, 우리는 그때 그때 이마에 십자성호를 긋는다』라고 했다. 이 말을 통해 초대교회 신자들은 십자성호를 긋는 것이 곧 행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봉헌함을 나타내는 표시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십자성호에는 구마적 성격도 들어 있었는데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에 관한 일화를 보면 그를 찾아 온 손님들이 악마들의 소란으로 무서워 떨고 있을 때 안토니오는 『여러분 어서 십자성호를 그으십시오. 악마들이 여러분에게 올 경우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몸과 거처하는 집에다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십자성호가 교회예식에 도입된 것은 2세기경이었고 특히 세례성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있었다. 교회 초기부터 예비신자들의 입교예식에서 하느님의 소유물임과 구원에 대한 상징으로 이마에 십자표를 그었다.
▲ 십자성호는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음을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된다는 것을 신뢰하는 표시이다.
4~5세기경부터 사제가 사람이나 사물에 십자를 그어 축복하는 관습이 생겨났다. 4세기의 성 치릴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이마에 뿐만 아니라 먹는 빵이나 마시는 잔과 같은 물건에도 성호를 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매일의 일상생활 속에서 십자성호를 그었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십자성호는 5세기경에 나타났는데 초기에는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어깨로 넘어가는 그리스식 십자성호가 사용됐으나 13세기부터 현재와 같은 라틴식 십자성호가 보급됐다.
십자성호를 하면서 성삼위의 호칭을 부르는 것은 중세초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초기의 세례신앙 기도문에 기원을 두고 있다. 12세기부터는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십자를 그리는 형식이 전례에 도입됐다.
십자성호는 각종 기도나 전례 시작과 끝에 사용하는데 기도를 올리기 전에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기도를 바치는 데 필요한 자세를 갖추게 하여 마음과 뜻을 하느님께로 돌려주기 때문이요 기도를 드리고 나서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하느님이 베푸신 은총을 우리 안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게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갈라디아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