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무슬림과 그리스도교 신자들 간최대 규모의 충돌로 알려진 이 사태에 대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0월 12일 수요 일반 알현을 통해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표명했다.
이 사태는 사건 발생 일주일 만인 10월 15일, 이집트 군부가 ‘종교적 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을 승인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으나 법적으로 종교적 차별 금지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는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 이집트 인권단체들은 과연 실질적으로 차별금지 법안 내용이 실행될 수 있을 것인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이집트 무슬림과 콥트교인들 간 갈등의 이면에는 어떤 배경이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콥트교회의 생성 과정과 함께 그 내용을 살펴본다.
▲ 이집트 카이로 인근 난지도의 동굴 교회.
콥트교회는 교회 역사 안에서도 아주 오래된 역사를 드러내는 교회 중 하나다. 교회역사가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260~340년경)에 따르면 복음사가 마르코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와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또 사도 바오로의 측인이었던 아폴로도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다인이었다. 당시 이집트 중심 도시는 알렉산드리아였는데 이곳 유다인 공동체에서 그리스도교 개종자가 처음 나왔다고 한다.
이 시기의 이집트 그리스도교를 콥트교회라 부르게 되었는데, 콥트(Coptic)라는 말은 아랍어로 이집트인을 의미하는 ‘알-굽트(al-gubt)에서 유래된 용어로 알려진다.
서기 150년경 콥트어로 기록된 요한복음서 단편이 이집트 남부지방에서 발견된 점을 감안할 때, 마르코의 선교 100년 만에 그리스도교는 이집트 전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313년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후 320년경에는 파코미오에 의해 최초의 수도원이 설립되는 등 발전을 이뤘으나 451년 칼체돈공의회 직후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는 대부분의 신자들을 이끌고 그리스도 단성설(monophysitismus)을 따르는 콥트교회를 결성했다. 가톨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두 가지를 주장하는 것과 달리 그 반대의 길을 선택한 콥트교회는 이후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돼 나갔고 독자적인 노선을 지켜왔다. 반면 칼체돈 공의회를 따르는 소수 신자들은 멜키트 가톨릭교회라 불리게 됐다.
7세기 중엽 이후 이집트가 이슬람화된 이후 그 영향력이 너무 컸던 관계로 오늘날 이집트는 국민의 90% 정도가 무슬림 신자인 이슬람 국가가 돼 있는 상태인데, 이 같은 역사적 배경 안에서 단성설 영향을 받은 정교회 콥트교회가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계속 유지해 오고 있다. 현재 알렉산드리아에는 콥트와 멜키트 신자들을 위한 각각의 총대주교좌가 설립돼 있다.
무슬림과의 갈등
이집트는 중동에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이집트 콥트교회 신자수는 약 58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교회측 집계 수치는 이보다 두 배에 달하는 1000만 명 이상이다.
이집트 전체 인구 약 8200만 명 가운데 10%를 웃도는 비중이지만, 이들은 절대 다수의 이슬람에 밀려서 오랫동안 신민(臣民)과 같은 신분이 된 상황이다.
이슬람이 이집트를 지배하면서 콥트교회 신자들은 인두세 지불과 함께 선교는 물론, 교회 건축과 수리 등에서도 차별을 받으며 어려운 신앙생활을 해야 했고 국민의 권리 면에서도 생존권?생활권?재산권 등은 인정받았으나 결국 탄압받는 2등 국민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차별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는 교회 건설 및 수리에 대한 대통령 허가가 내려지지 않거나 대학 입학, 교육에 있어서도 차별 대우를 받았고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테러도 빈번했다.
예를 들어 1981년의 경우 카이로 근교 알 자위야 알 하므라 마을에서는 100여 명이 살해당하고 수백 명이 집을 잃는 한편 다섯 개 교회가 불타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앞서 1977년에는 콥트교회 총대주교인 시누다 3세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가택 연금되기도 했다.
2000년에도 카이로 남쪽 마을에서 무슬림과 콥트교인들의 충돌이 발생, 콥트교인 12명과 무슬림 1명이 살해당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 같은 배경에서 2000년 2월 카이로와 시나이산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양 종교간 평화와 대화를 촉구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