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라는 시청각 소재를 통해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주제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 때로는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존재가 없는 대상들도 그것을 시각화, 청각화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형상화해 경험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지상 순례의 끝이라 여겨지는 ‘죽음’이라는 단어는 가장 불명확하고, 모호한 대상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처럼 특별한 대상마저도 더욱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죽음’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위령성월을 맞아 ‘죽음’을 다룬 몇 편의 영화들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가운데 새롭게 다가오는 ‘죽음’의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히어 애프터(Here after)
히어 애프터는 ‘죽음’을 보는 남자, ‘죽음’을 겪은 여자, ‘죽음’과 함께하는 아이 등 세 주인공의 이야기가 옴니버스(omnibus, 몇 개의 단편을 결합해 전체로서 정리된 분위기를 내도록 한 작품)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첫 번째 주인공 마리는 기자로서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믿는다. 하지만 어느 날 여행지에서 갑작스런 쓰나미로 ‘죽음’ 이후를 경험하게 되면서, 커다란 삶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그리고 ‘죽음’과 사후세계의 보이지 않는 힘을 다룬 책을 발간하기에 이른다.
두 번째 주인공 조지는 죽은 자와 대화할 수 있는 남다른 능력을 지녔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오고, 형마저 그 능력을 돈벌이로 이용하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재앙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매번 ‘죽음’을 현실에서 받아들여야 하고, 떠나간 이와 남겨진 자의 안타깝고 고통스런 기억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뜻밖의 교통사고로 쌍둥이 형을 잃은 세 번째 주인공 마커스는 형을 그리워하며 사후세계를 본다거나 죽은 이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이들을 찾아다닌다. 약물 중독으로 자신들을 돌볼 수 없는 어머니를 대신해 서로 의지하며 자라왔기에 서로의 존재가 너무나 각별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조지를 만나게 된 마커스는 형과의 대화를 통해 위안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각자 ‘죽음’과 사후세계에 관한 경험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진행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죽음이 마침이 아니라 주님 안의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는 점을 영화가 상징적으로 알려 주고 있는 것.
버킷 리스트(Bucket list)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리스트를 일컫는다.
영화는 노년의 자동차 정비공 카터가 갑작스런 시한부 선고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죽음을 앞둔 카터는 잠깐 다녔던 대학에서 과제로 받았던 버킷 리스트를 떠올리고 다시 적어본다. 하지만 40여 년을 가족을 위해 꿈을 버리고 헌신했던 그에게 버킷 리스트는 잃어버린, 또 이룰 수 없는 꿈을 상기시키는 씁쓸한 상처일 뿐이었다.
한편,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돈 벌기에만 혈안이 돼있는 재벌 사업가 에드워드가 카터와 한 병실을 쓰게 된다.
어느 날 에드워드는 카터와의 병원생활 중 우연히 카터가 버린 버킷 리스트를 보게 되고, 이를 실천하러 떠나자고 제안한다. 병원 침대 위에서 죽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죽거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심산에서다. 두 사람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버킷 리스트의 내용을 지워나간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사냥하기, 문신하기, 카레이싱과 스카이다이빙하기,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등 평범하고도 독특한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여정을 통해 잔잔한 우정을 쌓아나간다. 무엇보다 이 여행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찾게 된다.
카터는 버킷 리스트를 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에드워드도 죽음과 함께 ‘히말라야 등정해 장관 보기’를 이루고 카터의 뒤를 따른다. 두 사람의 유골은 히말라야 산 위에 함께 묻힌다.
이 영화는 죽음을 앞둔 두 노인을 통해 삶의 기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각자의 인생을 통해 채워나가야 할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했는가?’
사랑한다는 말보다 아름다운 인사(Good & Bye)
도쿄에서 오케스트라 첼로 연주자였던 다이고는 오케스트라가 해체되는 바람에 졸지에 백수가 되고 만다. 게다가 빚을 내 산 거액의 첼로 역시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다이고는 모든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아내 미카와 함께 고향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일자리를 구하던 다이고는 우연히 ‘연령 무관! 고수익 보장!’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의 여행가이드 구인광고를 발견하고 면접을 보러 간다. 1분 만에 면접이 끝나고 단순히 여행사인줄로만 알았던 가이드 일자리는 인생의 마지막 여정 길을 배웅하는 납관일이었다.
얼떨결에 따라간 첫 임무는 자살로 사망한데다 부패한 시체를 염하는 것. 다이고는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이고는 계속 그 일을 해나가면서 죽은 이들을 위한 숭고한 의식에 매료돼 납관일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다이고는 아내의 반대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죽은 사람을 대하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 정갈하고 단정했다. 아내는 다이고가 염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난 후에야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이고는 어느새 첼로를 다시 켠다. 오케스트라에서 보여줬던 연주와는 다른, 자신을 오롯이 담아낸 혼신의 연주였다.
얼마 후 다이고에게 아버지의 사망소식이 들려온다. 처음 다이고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거부하려고만 한다. 아내의 설득에 못 이겨 아버지를 찾아간 다이고는 아버지의 시신을 함부로 다루는 상조회사의 모습에 분개하고 자신이 직접 염에 나선다.
다이고는 아버지의 몸을 조심스레 씻기던 중 꽉 쥔 손이 눈에 들어온다. 겨우 편 아버지의 손 안에는 어릴 적 자신이 아버지와 나눴던 작은 돌멩이가 들어있었다. 다이고는 그제야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이고는 눈물을 흘리며 정성스레 아버지를 배웅한다.
이 영화는 죽음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여행에 비유, 마지막 순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한편, 납관일을 소재로 삼아 떠나가는 이와 남겨지는 자들의 마지막을 돌아볼 소중한 시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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