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성월.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이 달에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일에 봉사하고 있는 김종진(바오로·60·서울 역촌동본당 연령회장)·김정옥(수산나·55)씨 부부를 만났다.
“염(殮)하는 과정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시(收屍)에서 염습(殮襲), 입관, 무덤에 묻히는 그 순간까지 가톨릭 상장례의 모든 절차가 기도입니다. 가시는 분들에게 저희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가신 분’이라는 한마디가 가슴에 맺혔다. 이들 부부에겐 죽음이란 ‘가는 것’이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기도로써 도와주는 봉사, 그것이 바로 연령회 봉사라고 했다. 가톨릭 상장례 지도사 교육과정의 일반상장례와 전문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 부부가 처음으로 연령회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인 김정옥씨가 모친상을 당하면서다. 모친상을 치르면서 연령회원들의 염하는 모습의 경건함에 감명을 받은 김정옥씨는 연령회 봉사를 결심했고 활동 1년 후엔 남편 김종진씨도 함께 연령회로 이끌었다.
“가시는 분들은 시간과 장소를 약속해 주지 않습니다. 신자라도 새벽에 갑작스레 봉사를 나가는 가족을 이해하기 어렵죠. 연령회 봉사는 봉사자의 가족도 함께 희생하는 일이에요.”
막상 시작한 연령회 봉사는 쉽지만은 않았다. 그저 죽은 이를 마주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인데 연령회 봉사에는 그보다도 어려운 일이 가득했다. 갑작스레 새벽에 연락이 오는 일은 예삿일이고 명절, 휴가에도 한 통의 전화에 발길을 돌려 영안실을 향하기도 했다. 혹여 사고사로 시신이 늦게 발견되거나 수사 등으로 장례가 지연되면 시신이 심하게 부패돼 지독한 악취와 싸워야 하기도 했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염할 수 있었다. 정말로 괴로운 일은 따로 있었다.
“본당 활동을 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할 때 가장 괴롭습니다. 함께 레지오 활동도 하고 형제처럼 지내던 친구가 먼저 갔을 때는 염을 하는 내내 울었어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는 김종진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바로 어제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을 오늘 시신으로 만나는 일은 말 못할 고통이었다. 이들 부부는 유족에게는 호상(好喪)이란 말을 쓰면 안 된다고 했다. 백세가 넘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가족에게는 사랑하는 이가 떠난 슬픈 일이라 했다.
그래도 시신을 돌아가신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봉사하는 이들 부부에게는 이제 연령회 봉사만큼 보람되는 일이 없다. 유가족의 감사는 연령회 봉사에 큰 힘이 돼줬고, 특히 천주교의 상장례 예식을 보고 개종하거나 냉담을 푸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이들 부부의 큰 기쁨이었다. 부부는 연령회 봉사를 하면서 한 사람의 죽음으로 온 가족이 세례를 받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이렇게 연령회 봉사를 통해 늘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 부부에겐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떤 분은 가실 때 인상을 쓰고 가시고 어떤 분은 편한 얼굴로 가시죠. 편한 얼굴로 가신 분을 보면 저도 마음이 평안해져요. 연령회 봉사를 하기 전에는 죽음만큼 두려운 것도 없었는데 이제는 죽음보다도 주님 곁에서 올바르게 살다가 가지 못하게 될까봐 더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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