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구 동창신부 몇 명이 소주 한잔을 기울일 일이 있었습니다. 일상적으로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느 신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인생, 지금까지 가만히 보니 그동안 죽어라 직구만 던지며 살아온 것 같아. 하하, 그것도 단순무식한 직구만.”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신부가 “아니, 그렇게 직구만 던지면 되겠어? 그러면 상대방에게 쉽게 안타나 홈런을 맞을 수 있어. 그래서 어느 정도는 직구와 변화구를 섞어 던질 줄 알아야 삶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겠지.”
그러자 처음 말한 신부가 “우리 삶이 나름 전문적인 삶이지만 그렇다고 냉혹한 ‘프로세계’는 아니잖아. 프로야구에서 투수들은 어떻게 하면 상대방 타자를 이리저리 요리를 해서 삼진을 잡을까 고심하잖아. 그래, 그건 프로 선수들이라 그렇게 해야지. 그래야 높은 연봉이나 그 밖의 이익을 더 얻을 수 있잖아!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 같아. 온갖 수 싸움 해가면서, 잔머리 쓰면서 상대방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승률이나 승수를 챙겨야 하는 그런 삶, 그거 우리 삶과는 다른 삶이잖아. 그러기에 우리 삶은 나름 최선을 다해 직구를 하나 하나 던지듯 살면 된다고 봐. 우리 삶, 뭐 그렇게 다양한 구종의 공을 가지고 요리조리 상대방을 공략해서 삼진을 잡아야 하는 그런 복잡한 삶을 살 건 아니라고 봐. 단순하고, 솔직한 내 삶을 살면 된다고 봐! 우리는 교회 사람이잖아. 본당 사목 하면서 전력투구를 다해 내가 할 줄 아는 것 단순하고 솔직하게 직구 하나, 제대로 던질 줄 알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직구 던지듯 투신하면서 본당신자들 열심히 섬기고 사랑하고, 내가 해야 할 기본 도리를 충실히 다하고, 교회 안에서 진실과 정의 앞에서 바른말 제대로 할 줄 알고.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직구 던지듯 투신하면서 살 거야. 그 직구 하나 하나에 전력투구하면서 살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날 주변의 다른 동창 신부들은 그래도 때로는 변화구도 던질 줄 아는 지혜로운 삶을 강조했지만, 마지막까지 직구 하나라도 제대로 던지며 살고 싶다는 그 동창의 고집스러운 말이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마음 안에 너무 크게 울림이 되어 좋은 여운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세상살이든 교회든 간에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면서, 늘 수 싸움 하면서 그렇게 내 이익과 승리를 위해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마음으로 살기보다는 이 삶 좀 즐기면서 살아도 될 듯합니다. 비록 단순 무식하게 직구 하나만 제대로 던질 줄 아는 삶이라 결국 승률도 낮고, 승수도 턱없이 모자라는 좀 어리석은 삶처럼 느낄 수 있겠지만, 그러한 좀 꼴찌 같은 삶, 그렇지만 문득 우리 주님께서는 그 ‘꼴찌 같은 등수’를 당신 마음에 드실 정도로 올려 주시지 않을까 합니다.
날마다 주어지는 오늘 하루, 제대로 된 직구 하나 정직하게 던지며 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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