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미디어 생태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진앙은 종합편성채널(종편)이다. 한 번 교란된 생태계는 그 특성상 원상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파괴적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세상 속에 발을 딛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미증유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종편으로 대변되는 포식자 앞에서 미디어렙으로 대표되는 천적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전체 미디어 생태계의 지형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교회 언론 역시 태풍의 눈에 들어가 있다.
미디어 생태계를 뒤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종편과 미디어렙을 둘러싼 문제는 언론 환경뿐 아니라 사회·문화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종합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가톨릭신문은 교회 안팎을 둘러싼 미디어 환경 변화와 이러한 변화가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전망해보기 위해 예언자적 시각을 바탕으로 미디어렙에 대한 특별기획을 마련한다. 이 기획을 통해 종편 출범 이후 미디어 광고시장의 변화 등을 포함한 미디어 생태계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꾀해나갈 계획이다.
‘북한이 금강산댐 둑을 터뜨리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체가 12~16시간 만에 물에 잠기게 된다.’
지금은 누구라도 웃어넘길 코미디 같은 뉴스가 전파를 탔던 1986년, 전 국민을 감쪽같이 속여 넘긴 이른바 ‘평화의 댐’ 사건은 코흘리개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을 모금 대열에 동참하게 함으로써 방송의 위력을 보여준 일대 희극이었다. 지금도 학계나 언론계에서는 방송의 공공재적 성격을 확인시켜준 일로 회자되기도 한다.
방송을 비롯한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미디어가 지향하는 바에 따라 세상이 요동치기도 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얼마 전 터진 미국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News Corp.) 계열 신문사 저널리스트들의 불법도청 사건이다. 결국 계열사인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 1843-2011)’ 폐간으로까지 이어진 이 사건은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의 행태에 따라 한 사회의 근간이 뒤흔들릴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미디어 생태계에 또 다른 포식자가 나타났다. 종편으로 이름 붙여진 이 포식자는 특유의 식성으로 생태계를 급격하게 교란시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 종합편성채널·미디어렙(Media Representative)
종합편성채널이란 뉴스 보도는 물론 드라마나 교양·오락·스포츠 등 모든 장르를 편성해 방송할 수 있는 채널을 말한다. 모든 장르를 편성한다는 점에서는 지상파 방송과 다른 점이 없지만 케이블TV나 위성TV를 통해서만 송출하기 때문에 가입한 가구만 시청할 수 있다. 또 하루 19시간으로 방송시간을 제한받는 지상파와는 달리 24시간 하루 종일 방송을 할 수 있고, 중간광고도 허용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 국민의 80% 이상이 케이블TV나 위성TV를 시청하고 있기 때문에 지상파와 맞먹는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최근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미디어렙’이란 낯선 용어는 미디어 레프리젠터티브(Media Representative)의 줄임말로 방송사의 위탁을 받아 광고주에게 광고를 판매해주고 판매대행 수수료를 받는 회사를 말한다. 이런 대행체제는 방송사가 광고를 얻기 위해 광고주한테 압력을 가하거나 대자본을 보유한 광고주가 광고를 빌미로 방송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방송의 공공성 확보와 전파 수익의 사회환원을 목적으로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설립돼 방송사들의 미디어렙 역할을 독점해왔다. 코바코는 지상파 방송은 물론 KNN 등 지역민방과 종교방송의 광고를 도맡아왔다. 하지만 국가독점이 방송에 대한 정치권의 입김을 강화한다는 지적과 함께 광고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1999년 말 통과된 통합방송법은 코바코의 방송광고 독점대행제도를 폐지하고 새 미디어렙을 설치하며, 방송광고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위하여 방송의 제작·편성과 광고영업 분리를 제도화하기 위해 방송사의 직접 광고영업과 미디어렙에 대한 방송사의 출자를 금지했다. 이를 계기로 민영 미디어렙 신설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2008년 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민영 미디어렙 도입이 다시 추진됐고,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가 코바코의 독점적 지상파방송광고 판매대행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코바코와 코바코가 출자한 회사만이 지상파방송 광고를 대행하던 독점체제가 무너지고 경쟁체제로 접어들게 되었다.
■ 종편으로 변화되는 미디어 생태계
지난 2010년 12월 31일 정부는 신규 종편사업자(종합편성채널)로 조선·중앙·동아 등 이른바 빅3를 포함한 4개 언론사를 선정했다. 조선·중앙·동아 등 거대 신문사들이 지분을 가진 종편채널은 일종의 케이블 채널이다.
케이블은 미디어렙의 규제를 받지 않고 신문처럼 직접 광고영업도가능하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이 신문사들도 직접 광고영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신문사가 소유한 종편은 유선을 통해 전체 가구의 86%에 전달되는 사실상 전국방송이며 편성장르도 기존 지상파와 거의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이들 종편 채널도 지상파처럼 미디어렙의 규제를 받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만약 적절한 규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방송 광고시장이 무한경쟁으로 치닫게 돼 방송은 물론 미디어 생태계 전체가 혼란을 겪게 된다.
실제 방송 광고시장에 경쟁체제가 도입된 경우 시청률 지상주의를 불러와 방송 프로그램의 선정화와 뉴스 프로그램의 연성화 등 방송 프로그램의 질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는 사례를 서구 미디어 환경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광고주들은 더 많은 시청자가 시청하는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보내려 할 것이고 이러한 광고주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방송국들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더 많이 끌 수 있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들을 제작, 방송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시청자 확보와 광고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방송국들 간의 치열한 경쟁은 결국 방송 프로그램의 질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의 방송 프로그램 양산에 초점을 맞추게 될 수밖에 없다. 시청률이 낮은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보다는 시청률 확보가 손쉬운 연예, 오락 위주의 프로그램들이 안방극장을 차지하게 되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뉴스 프로그램의 경우 심층보도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고발 등 사회 감시 기능이 강한 아이템보다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토픽성 아이템 위주로 제작돼 뉴스의 연성화가 이뤄질 개연성이 높다.
종편의 등장으로 시작된 변화가 미디어 생태계의 교란, 나아가 황폐화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의 조짐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 종합편성채널 추진~선정 과정
□ 2008년
12월 3일 - 한나라당 미디어산업발전특별위원회, 신문·방송 겸영 허용하는 신문법 개정안 등 7개 법률 개정안 제출 확정
□ 2009년
3월 6일 -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 구성 의결
6월 25일 -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 한나라당·선진당 추천위원, 최종보고서 국회 문방위 제출
- 신문과 대기업의 지상파방송 진출을 허용하되, 지상파에 대한 겸영은 2012년까지 유예
7월 21일 - 한나라당 최종 수정안 제시
- 한나라당·민주당 간 협상 결렬
7월 22일 - 한나라당,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 점거…국회부의장 미디어법 직권상정·표결처리
7월 23일 - 민주당 등 야당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
10월 29일 - 헌법재판소, 미디어법 권한쟁의사건 결정 선고
□ 2010년
1월 19일 -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국무회의 의결
- 방송 진출 신문사, 재정·부수 공개 의무화 및 전체 가구 수 대비 연평균 유료 구독가구 수 20% 초과 신문사 방송 진출 금지
5월 18일 - 종편 및 보도채널 선정 일정 발표
9월 2일 - 기본계획안 관련 의견 수렴 공청회(사업희망자 참여)
9월 17일 - 기본 심사계획안 의결
11월 10일 - 세부 심사계획안 의결 및 사업자 공고
11월 30일~12월 1일 - 사업신청서 접수
12월 31일 - 최종 사업자 발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