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장영희 교수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故)장영희 교수(마리아·서강대)는 2003년, 가톨릭신문 ‘방주의 창’에 이러한 글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사람의 뒷모습은 앞모습보다 정직하다.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던 고인의 뒷모습에는 무엇보다, 정직한 사랑 하나가 남았다.
▧ 축복
지적장애여성자활공동체 ‘맑음터’에 올 10월, 장영희 교수의 선물이 도착했다. 장 교수의 유족들이 월간 ‘샘터’가 장 교수에게 전달한 상금 500만원을 다시 이곳 맑음터에 기부했기 때문이다.
맑음터 가족들은 이 상금을 바탕으로 건물 입구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정자를 ‘별 헤는 찻집’으로 변화시켰다. 기둥 네 개와 지붕에서 물이 샜던 정자는 금세 동화 속 아름다운 찻집이 됐다. 찻집 옆에는 월간 ‘샘터’와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장 교수를 기억하기 위한 ‘마리아서재’와 ‘희망나무책방’도 함께 열었다. 10월 29일, 이들은 맑음터에서 축복식과 시 낭송회, 작음 음악회를 열었다.
“별 헤는 찻집이 지나가는 지친 영혼의 쉼터가 되길 빕니다. 동화 속 아름다운 집에 온 듯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꿈꾸게 해주셔서 그저 고맙습니다.”
찻집을 다녀간 손님들의 글귀는 장 교수의 문체만큼 아름답다. 미리내성지(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인근에 위치한 터라 순례의 목적을 가진 방문객들이 많다. 10여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15㎡의 작은 공간이지만, 미리내수도회 수사들이 만들어준 나무탁자와 의자에 앉아 장 교수의 책을 읽으면 모든 시름이 잊힐 것 같다. 맑음터 가족들과 ‘별 헤는 찻집’을 만든 원장 권원란(안젤리카·58)씨의 바람은 단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알고 갔으면 좋겠어요. 돈으로 가치를 매기는 찻집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는 찻집, 지나가는 이들이 들러 편히 쉴 수 있는 찻집, 신앙인으로서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맑음터 가족들의 이러한 뜻을 담아 찻집은 무인찻집으로 운영된다. 커피는 물론 목련차, 구절초차 등 유기농 허브티를 직접 내려 마시며 모두가 주인이 된 마음으로 별 헤는 찻집을 사랑해달라는 뜻이다. 맑음터 가족들은 설거지 등 뒷정리를 한다.
“가족들이 찻집이 생기고 난 후 너무나 좋아해요. 뒤에서 소리 없이 찻집을 관리하지만 정말 열심이지요.‘좋은 마음들이 이곳 산골짜기, 여기까지 흘러와 모이고 모여 이렇게 살고 있구나’하고 보아주셨으면 해요.”
▲ 맑음터 가족들이 입구 어귀에 별헤는 찻집을 세웠다.
▲ 맑음터를 지키는 강아지 마당쇠.
▲ 마리아서재 안에 꽂힌 장영희 교수의 책들.
장 교수는 생전 장애인, 특히 여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1990년, 서강대 옆에 위치한 서울 맑음터 가족들과 미사에서 인연을 맺고, 그들이 만든 공예품을 구입해 자신의 출판기념회 기념품으로도 많이 사용했다.
장애로 인해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지만 인사를 나눈 것만으로도 맑음터 가족들은 장 교수를 느끼고 있었다. 장 교수는 이곳 가족들과 다른 많은 이들의 영혼 안에서 살고 있다. 맑음터 가족 김화주(사비나·30) 씨가 말을 꺼냈다.
“정말 좋았어요. 저희를 보면 항상 밝게 웃어주셨어요. 편안하고 따뜻했어요.”
김씨는 ‘말로만 듣던 북카페가 이곳에 생기니 기분이 좋다’고 했다. 손님이 오자 상기된 모습으로 이것저것을 챙겨주기 위해 분주해졌다. 그는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구경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별 헤는 찻집’에도 밤이 찾아왔다. 하늘 위에 별이 하나, 둘 불을 밝혔다. 윤동주 시인의 말을 빌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장영희 교수와 맑음터 가족의 얼굴이 떠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다.
▲ 찻집안.
▲ 별헤는 찻집 안에서 이야기하는 권원란 원장.
▲ 맑음터를 방문한 손님을 반기는 성모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