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 김홍식(도미니카)씨는 스스로를 ‘도시 산책자 플라뇌르(Flaneur)’라고 부른다. 도시 산책자답게 그의 작품 배경은 ‘도시’다.
“도시는 삭막하고 관계의 부재로 상징되지만, 내가 살아가는 도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는 도시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리의 풍경, 표지판, 기념비적인 건물 등을 스테인리스 스틸 위에 인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꼭 도시의 아름다운 공간만을 소재로 삼지 않는다. 신경에 거슬리는 부분, 예를 들면 ‘숭례문’ 화재사건과 같이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작가는 지난 2008년부터 일 년 단위로 ‘그날 이후-다시 쓰고 싶은 기록’이란 제목으로 숭례문 사건을 스테인리스 스틸에 기록하고 있다. 커다란 픽셀화 형식으로 2~4개 혹은 9개의 작업이 한 이야기를 이루는 그의 작업은 제단화를 연상하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역동적인 도시의 모습을 무채색의 스테인리스 스틸에 표현한다는 점이다. 김씨의 작업은 사진과 거의 비슷하다. 이미지를 만들고, 필름을 만든다. 이후 필름을 감광하고 스테인리스 스틸 판에 이미지를 안착시키고 부식시킨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사람의 손을 벗어나는 부분이 있기에 작업이 더욱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작업과정을 거쳐 나온 작품은 종이에 찍힌 형상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스틸 판 자체다.
“그림자 같은 음각만으로 남은 스테인리스 스틸 작업으로 도심을 중심으로 한 기록 작업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어요. 제 작업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사진과 판화의 만남이라고 볼 수 있겠죠.”
지난 10월 서울 성북동 전시공간 스페이스 캔에서 ‘산책자의 도시’란 제목으로 전시를 연 바 있는 작가는 전시공간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작품은 작품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조화를 이루며 진정한 작품으로 거듭나는 거라 생각해요. 사회적 기업인 스페이스 캔에서 전시하는 것이 제 작업과도 잘 맞아 기쁘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김씨는 인터뷰 중에 플라뇌르(산책하는 사람)와 순례자의 의미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플라뇌르라는 개념 자체가 어슬렁거리며 걷는 게 아니라 한 발 물러나 뒤돌아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찰하며 순례하는 순례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또한 되돌아보기는 곧 성찰, 고해성사와도 같은 의미가 아닌가 생각돼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제대로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깨어서 정확히 바라볼 수 있고 모든 것이 같이 이뤄지고,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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