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수원 정자동주교좌성당에 특별한 자리가 열렸다. 50년, ‘반세기’를 사제로 산 이명기 신부의 금경축이다. 수원교구 사제로, 본당신자들의 사목자로 50년을 교회와 함께한 이 신부의 소회를 듣기 위해 교구청 인근 그의 아파트를 찾았다. 수단을 입고 이명기 신부가 따뜻한 미소를 건넸다.
▧ 사제로 50년, 금경축을 말하다
이명기 신부의 금경축 소회는 간단했다. ‘특별한 것’이 없고 ‘어떻게 하다 보니 50년이 흘러왔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더니 ‘성남’이야기를 꺼냈다.
“성남이 어떻게 생긴 동네인지 알지? 예전에 판자촌에 있던 사람들이 이곳에 집을 짓고 많이 살았어. 그때 나는 군종신부로 갓 제대를 해서 둔전말본당(현 수진동본당)에 부임을 했어. 성당이 없어서 성당을 지으려고 애를 참 많이 썼지.”
이 신부는 둔전말본당의 보금자리를 짓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오랜 시간을 또렷이 떠올렸다. 육영수 여사를 우연히 만나 땅 문제가 해결됐던 일, 고향의 목수가 우연히 찾아와 성당을 지어주겠다고 한 일, 교구장 김남수 주교의 소개로 만난 한 본당 총회장의 도움 등. 아무 것도 없던 젊은 시절, 우연히 인연을 맺은 은인들은 그가 만난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성당을 짓고 나서 주판을 아무리 튕겨 봐도 어떻게 지었는지 모르겠어. 아, 그래서 ‘하느님이 보내주셨구나’하고 생각했지. 8년 만에 100평짜리 건물 3층을 지었어. 성당 봉헌식 때는 가슴이 참 벅차오더라고.”
지금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추억, 성남대리구 수진동본당에서 그는 1968년부터 13년간을 사목했다. 오랜 세월, 고생도 하고 재미있고 보람도 있게 살았다는 그의 말에는 ‘사제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 사제에게 건네는 말
“생각도 안 해봤고, 본인이 알아서 살아야 하는 건데, 그건.”
50년을 먼저 산 선배 사제로서 후배 사제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이었다. 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이명기 신부가 입을 열었다.
“신학교 교수님들이 툭툭 던지는 말씀 중에 명언이 많아. 그 가운데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어. ‘튀는 신부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 평범한 신부가 되어도 신자들은 다 따라오게 되어있다는 말. 나같이 ‘재주 없는 사람’한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그래서 잔꾀 부리지 말고 열심히 살아보자 생각했어.”
살아온 세월에 대해 그는 ‘허술한 점은 많겠지만 꾀부렸던 것은 생각이 안 난다’고 말했다. 이 신부의 말대로 ‘잔꾀’부리지 않고 살아온 50년이었다. 묵묵히, 성실하게 맡은 바 일은 최선을 다했다. 지나간 50년,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길거리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반갑지. ‘신부님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하고 말해주면 그 얼마나 듣기 좋고 나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야. 그런데 사실 다 생각나지는 않아. ‘신부님, 저 체칠리아인데요’하면 어디 체칠리아인줄 어떻게 알아? 그런데도 그렇게 반갑지.”
이명기 신부가 눈을 찡긋했다. 사제로서 50년, 뒤돌아보니 남은 것은 ‘신자들’이다. 신자들과 함께 고생도 하고, 보람을 찾고, 재미있게 살았다.
▧ 50년, 앞으로의 사제생활
5년 전 식도암 수술을 받은 이명기 신부는 ‘산책’으로 건강관리 중이다. 광교산 자락을 조심조심 걸으며 ‘걷기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며 만나는 신자들의 반가운 얼굴은 덤으로 받는 선물이다.
“건강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하겠다’이렇게 마음먹은 것은 없어. 다만 미사봉헌 땜질해주고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죽는 날까지 사제로 살다 죽는 것이고.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는 길, ‘외롭지는 않으시냐’는 우문에 백발의 사제가 현답을 던졌다.
“아, ‘50년’을 훈련한 일인데, 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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