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너무 선정적이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인 <폭스 뉴스>를 접해본 이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뉴스 평론가이자 앵커인 빌 오라일리(Bill O’Reillly)가 진행하는 폭스 뉴스의‘오라일리 팩터(The O’Reilly Factor)’에서는 과격한 독설이 조금도 걸러지지 않은 채 전파를 탄다.
오라일리는 인터뷰를 하다가도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입 닥치라(Shut up)”고 소리치는 막말방송으로 유명하다. 토론자를 불러놓고 수시로 말을 끊는다.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절대 말을 못하게 한다. 대놓고 면박을 주기도 해 더 이상 나올 수 없도록 만든다. 보수와 진보의 패널을 부를 땐 보수 인사 2명과 진보 인사 1명을 불러, 한 사람을 코너로 몰아붙인다.
폭스 뉴스의 여성 앵커들은 금발 미녀가 대부분이고 거의가 짧은 스커트 등 민망할 정도로 선정적인 모습으로 뉴스를 진행한다. 이러다 보니 방송 중 노출 사고도 심심찮게 생겨서 해외토픽감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선정적인 방송 포맷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폭스 뉴스에 중독되게 만든다.
이제 뉴스는 더 이상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냥 즐기는 형태로 넘어가고 있다.
시청률 지상주의를 외치는 루퍼트 머독이 사주이기도 한 폭스 뉴스는 현재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보는 채널이다.
1996년 방송을 시작한 후발주자임에도 케이블TV 뉴스에선 지난 2002년 CNN을 추월한 뒤, 압도적 우위 자리를 고수해오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PPP(Public Policy Polling) 조사에서는 49%의 미국인이 폭스 뉴스를 신뢰한다고 답해 시청률뿐 아니라 신뢰도에서도 1위에 올라 있다.
폭스 뉴스의 캐치프레이즈는 ‘공정하고 균형잡힌(Fair and Balanced) 시각’이지만 보수와 진보의 목소리를 함께 듣기는 거의 힘들다.
언론이 무한경쟁시장으로 내몰리면 그 결과 여론이 보수로 획일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언론학자들의 지적이 미국 사회에서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모습이다.
영국에서도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미디어제국이 여론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머독이 소유한 뉴스인터내셔널 그룹 산하의 신문들이 전체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최근 도청 의혹으로 폐간된 「뉴스 오브 더 월드(NOW)」 외에도 최대 판매부수의 타블로이드판 대중지 「더 선」과 정론지 「더 타임스」 등이 머독 손아귀에 있다. 여기에 지상파방송 <채널4>와 위성방송 <스카이> 등을 운영하는 머독의 매체들은 갈수록 영국 사회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 도청 의혹 등으로 폐간된 영국의 「뉴스 오브 더 월드」 최종 발행판.
철저하게 대중의 흥미에 영합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불법도 서슴지 않다 보니 공공성은 안중에서 사라져버린 모습이다.
프랑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방송에 자유경쟁체제가 도입되자 공영방송 영역에서도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방송광고 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훼손당하면서 방송의 상업화 현상이 심화됐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1993년 ‘부패방지 및 경제생활과 공적인 절차의 투명화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방송광고 판매의 공공성을 확보해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미디어 황제 머독이 지배하는 미디어그룹의 성공은 사회의 보수화 흐름이 기반이 됐지만 이제는 미국과 영국 두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보수화를 이끄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은 공화당이 아니라, 폭스 뉴스라는 게 워싱턴 정가의 상식이 돼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통신과 방송의 상호시장 진출을 가능하게 해준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이 자리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언론사간 M&A가 자유롭게 됐고 6개의 거대 미디어그룹이 영화채널, 케이블, 잡지, 방송사 등 전체 미디어의 90%를 장악하는 독과점이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미디어 공공성을 둘러싸고 많은 나라에서 시장논리와 공공서비스 논리 간의 격렬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폭스 뉴스와 같은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방송 매체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이러한 매체에 열광에 가까운 관심을 보이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흐름에 편승해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보도보다도 사견을 내세우는 진행자의 무리한 정치적 언동이 문제가 되더라도, 무미건조한 뉴스를 보기보다 차라리 선동적이더라도 재미있는 방송을 보겠다는 시청자들이 현저하게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여론시장의 왜곡으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여론 수용자인 국민에게 돌아간다.
경쟁중심으로 여론시장이 재편돼 방송의 공공성이 무너지면 방송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울러 프로그램에 보수적인 색채가 짙어지게 돼 방송이 다양한 여론 형성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다양한 매체와 프로그램 가운데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좁아져 결국 국민들은 먹고 싶은 밥이 아닌 차려주는 밥만 먹게 되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오랜 세월 힘들게 미디어 분야에서 쌓아온 공공성이 곳곳에서 침식되면서 덩달아 민주주의의 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 미디어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더 나은 인간사회 위한 봉사도구로 사용해야”
미디어에 관한 수많은 교회 문헌들
사회 의사소통 수단으로 미디어 강조
종사자·사목자·사용자에 교육 권고
교회가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접근하는 시발점이 됐다고 할 수 있는 문헌은 교황 비오 11세의 영화에 관한 회칙 「깨어 있는 관심」(Vigilanti Cura, 1936)이다.
이 회칙은 교회가 영상 매체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문헌으로 교황은 영화가 선의 도구가 되어 줄 것과 신앙과 도덕에 어긋나는 영화를 피하고 좋은 영화를 선별해서 볼 수 있도록 지성인들의 길잡이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교황 비오 12세는 자신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직접 목격한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 전자 미디어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회칙 「활동사진, 라디오, 텔레비전에 관하여」(Miranda Prorsus, 1957)를 발표해 이러한 매체들의 영향력을 반드시 선용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회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9개의 교령 가운데 가장 앞서 내놓은 사회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Inter Mirifica, 1963)의 바탕이 됐다.
미디어에 관한 교회의 첫 번째 공식 문헌이라 할 이 교령은 대중매체의 발달이 가져온 변화에 주목하면서, “대중매체는 하느님의 선물이므로, 이 선물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에 따라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교령을 골자로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룬 사목훈령 「일치와 발전」(Communio et Progressio, 1971년)을 발표했다. 총 187개항으로 구성된 이 훈령은 지금까지 발표된 어느 사회 커뮤니케이션 관련 문헌보다도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훈령이 발표된 지 약 20년 만인 1992년, 두 번째 사목훈령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Aetatis Novae)라는 더욱 발전된 문헌이 발표된다.
교황의 교도권에 바탕을 둔 공식 문헌들 외에도 교황청의 사회홍보평의회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다양하고 특별한 주제를 선정해 별도의 문헌들을 발표했다.
「음란물과 폭력물에 대한 사목적 응답」(1989),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교회 일치와 종교간 협력의 범주」(1989) 외에도 「광고 윤리」(1987), 「커뮤니케이션 윤리」(2000), 「인터넷 윤리」(2002), 「교회와 인터넷」(2002)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교회 문헌들은 미디어가 인간적이어야 하고 인간사회에 봉사하는 도구로서 인격체간의 참다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함을 강조한다. 나아가 미디어 종사자들과 사목자들, 그리고 수용자들까지도 교육하고 훈련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별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완벽한 커뮤니케이터’인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각자의 위치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맞갖은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해 공동선을 실현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