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할 때는 이 주변에 병원이 하나도 없어서 아픈 사람들이 갈 곳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종합병원이나 개인병원도 많이 생기고 또 보건소에서 우리가 하던 일을 많이 하고 있죠. 이제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폐원을 하는 거예요.”
성골롬반의원장 한노라 수녀는 어려웠던 우리나라의 모습을 떠올렸다. 1955년 한국전쟁으로 땅도, 사람들의 삶도 황폐해진 시절이었다. 같은 한국인 의사조차 외면했던 환자들을 이 파란 눈의 수녀들은 아무런 대가없이 정성껏 돌봤다. 아픈 이들을 고쳐주고 굶주린 이들에게 음식을 주고 옷을 나눠줬다.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골롬반의원을 ‘성당병원’, ‘수녀병원’이라 불렀다. 그렇게 56년 동안 춘천지역 사람들의 이웃이 돼준 성골롬반의원이 지난 10월 문을 닫았다. 다름 아닌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병원을 닫는 걸 보고 재산이 다 없어진다고 걱정하세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가진 것 하나 없이 이곳에 왔어요. 하느님께서 도구로 쓰셨을 따름이죠.”
한 수녀는 가진 것이 있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신기하게도 나누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필요한 것이 필요한 때에 갖춰졌다. 가진 것이 없었던 의원이었지만 춘천을 비롯한 인근지역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의원에서 약을 받고 식량을 받고 옷을 받고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받은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보살피고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위로해줬어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그걸 다 기억해요. 또 성공해서 잘 사시는 분들이 여기서 옥수수가루 타고 분유를 탔다고 ‘그때 그 도움을 못 받았으면…’하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참 많이 만나죠.”
성골롬반의원이 사람들에게 준 것은 단순히 물질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걸 통해 사랑을 받았다. 가장 힘들 때 손 내밀어준 기억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이제 의원은 없지만 수녀들의 사랑의 손길은 노인요양·호스피스 시설인 성골롬반의집에서 계속된다. 아니 오히려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 노인, 말기암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훨씬 더 노력하고 싶어요. 마지막 몇 년을 더 보람있게 존엄성을 갖고 끝까지 잘 살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강해요. 여기엔 봉사가 많이 필요하죠. 저희 말고도 많은 봉사자들이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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