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종편) 개국과 더불어 안갯속에 싸여있던 새로운 미디어 지형이 드디어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지난 1995년 케이블TV 출범에 이은 제2의 다채널 세상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 것이다.
공급자가 늘어나 시장에서 공급 경쟁이 확대된다는 것은 수요자인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일일 수 있다. 공급자들로서는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질은 높이면서 가격은 낮추기 위한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소비자들로 봐서는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규 종편 확대로 현실화된 우리 사회의 미디어 지형이 장밋빛 미래만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매체들이 경쟁하는 언론시장은 일반 상품시장과는 다른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방송시장은 공공성, 공익성, 시청자 권익보호라는 특수한 원리가 적용되는 곳으로 일반시장과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12월 1일 합동 축하쇼로 개국을 알린 TV조선(조선일보), JTBC(중앙일보), 채널A(동아일보), MBN(매일경제신문) 등 종편 4사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재미’라는 사실이 그들이 일찌감치 들어올린 기치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신생 채널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초반에 눈도장을 확실히 찍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이 필수불가결할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게 제기돼 왔다.
4개의 종편 가운데 초반 기선은 JTBC가 잡은 듯하다. 쉽게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을 수 있는 예능모드로 방향을 잡은 JTBC는 한창 뜨고 있는 오디션 프로에 우승상금 100만 달러를 내걸었을 뿐 아니라 톱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는 프로그램들을 편성해 승부에 나선 모양새다. 다른 종편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프로그램 편성의 1차적인 목적을 시청자 눈길잡기에 두고 ‘재미’의 함량 높이기에 목을 매고 있는 형국이다.
많은 관련 분야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대로 시청자들을 자극할 수 있는 오락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루면서 ‘생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미디어산업의 세계화·선진화를 내건 현 정부가 2009년 미디어법을 개정해 종편시대를 예고할 때부터 예상했던 대로 종편 4사가 출범하면서 시청률 지상주의가 더욱 심화되리라는 전망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방송사들이 시청률 지상주의에 목을 매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광고비’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경우 KBS는 수신료와 정부 보조금 이외에 운영 재원의 20∼60%를 광고에서 조달하고 있고, 민영방송인 SBS의 경우에는 모든 재원을 광고비로 충당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시청률 지상주의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시청자의 수준을 낮게, 그리고 시청 대상을 편중되게 잡을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방송의 질적 저하와 편중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전투구식 시청률 싸움이 저질 프로그램을 양산하고, 모기업인 메이저 신문사들의 색채를 이어받아 여론을 호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평가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언론 본연의 기능이 현저하게 약화될 것이라는 불안 섞인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 신생 채널로 출범한 종편. 시청률 높이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이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방송의 질적 저하와 편중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종편 출범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종교방송이다.
종교방송들은 우리 사회 안에서 주류매체가 포괄하지 못하는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건전한 여론을 형성해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종편의 등장으로 한정된 방송광고시장에서 가장 먼저 밀려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종교방송의 수익구조가 악화돼 언론으로서의 기능이 축소될 수밖에 없어 거대 매체들의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목소리만 사회에 공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결과 여론의 다양성이 사라지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시대의 징표에 민감하게 반응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자신의 몫과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나날이 발전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복음 선포를 포함한 인간 선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선용해야 하는 소명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재미 위주의 미디어 환경에 오랫동안 노출돼 있다 보니 그리스도적인 시각으로 현대 문화와 미디어를 볼 줄 아는 능력이 감퇴되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지상과제인 복음 선포에 있어서 미디어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역량과 자세를 갖춰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교회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현대의 문화와 미디어 현상들을 복음적 가치로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고,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올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미디어의 공익적 면을 함께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다양한 사목적 접근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복잡다단해지는 미디어 환경이 껄끄럽고 다루기 힘든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는 그릇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깨어있는 자세가 무엇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