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으며 힘이 돼주던 분”
▲ 윤공희 대주교
지금 이 자리에 주교님의 주검을 앞에 두고 인사를 드리지만, 아네게는 주교님을 멀리 떠나보낸다는 느낌이 별로 없습니다. 주교님이 지난 5개월 가까이 대전 성모병원에서 의식이 분명치 않은 것 같은 위중 상태로 입원해 있을 동안 세차례 방문을 하였을 때처럼.
『안젤로, 나 빅토리노가 왔어. 고통을 잘 이겨내고 있겠지. 다시 또 올께』하고 강복을 주고 나왔던 것처럼, 지금도 『안젤로 나보다 먼저 가야 하는구만! 그렇지만 우리 모두 오래지 않아 다시 만나지 않겠나? 신학교에서 우리 모두를 그처럼 사랑해 주셨던 교장 신부님을 뵙겠구만! 지다니엘 주교도 만나겠지. 잠깐이야! 우리 모두 잠깐이면 천국에서 다같이 만나게 되겠지』
저는 안젤로 주교님을 저의 사제적 삶의 동반자로 주신 것을 하느님께 늘 감사드립고 있습니다. 열서너살 어린 소년으로 소신학교에 같이 들어갈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안젤로 주교님은 마치 어깨동무하며 나란히, 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제의 길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소신학교에 같이 들어가 우리 둘은 소신학교 7년 과정을 같이 지내는 중에 안젤로 주교님은 나보다 일년 앞서 대신학교에 올라가서 나보다 일년 반 앞서 사제품을 받고 로마로 유학을 갔습니다.
저는 안젤로 주교님보다 일년 반 늦게 사제가 되고, 그 후 안젤로 신부가 로마에서 돌아온 후 3년이 지난 다음에 저도 로마의 같은 대학으로 유학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안젤로 주교님이 사제로서의 길을 나보다 좀 앞질러 가셨는데, 1963년에 제가 수원교구 초대교구장으로 임명됨으로써, 먼저 주교의 길에 들어섰고, 안젤로 주교는 10년 후에 저의 후임으로 수원교구 2대 교구장이 되었습니다. 그후로 안젤로 주교님이 수원교구를 외적으로 내적으로 얼마나 크게 발전시켰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둘은 사제의 길, 목자이 길에서 주님의 교회를 건설하고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걸어왔고 서로 힘이 되고, 위로와 격려가 되어 왔습니다.
이처럼 언제나 가까이서 함께 사제직을 길동무가 되었던 안젤로 주교님을 잠시 먼저 주님께로 보내드린다는 것이 지금 저는 너무나 덤덤한 심정입니다.
경애하는 안젤로 주교님!
주님 안에 영복을 누리소서!
■ 김수환 추기경(전 서울대교구장)
“천국에서 영생 누리십시오”
▲ 김수환 추기경
이 시간 신앙인으로는 주교님께서 이미 천국의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계실 것을 믿으면서도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이별의 슬픔을 아니 느낄 수 없습니다.
김남수 안젤로 주교님과 저는 세상에 태어난 날짜가 하루 차이입니다. 저는 1922년 윤 5월 8일에 났고, 김주교님은 하루 늦은 9일에 나셨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김주교님의 작고소식을 듣고 나보다 하루 늦게 난 사람이 어찌 나를 추월해 먼저 천국으로 가셨는가? 교통 규칙 위반이다. 이렇게 무엇인지 일이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아니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김주교님도 스스로 가시고 싶어 가셨겠습니까?
이제 이렇게 한국 교회와 외국 선교를 위해 큰 업적을 남기신 주교님을 이승에서는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은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입니다. 묵시록 말씀대로 김주교님은 이제는 죽음도 고통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는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의 안에 영생을 누리십니다.
■ 모란디니 대주교(교황대사)
“양떼 위해 평생 바치신 목자”
▲ 모란디니 대주교
김주교님을 회고하면서 저는 주교님의 사제수품 50주년 기념미사 때 드렸던 축사의 몇 마디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부여하신 모든 신자들에 대한 사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사제로서 또 주교로서 당신의 한 평생을 바쳐 하느님의 양떼를 위해 봉사하셨습니다.
주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그 자체였으며 사회의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위해 희망과 사랑을 주신 참 목자이셨습니다』
이는 주교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놓으신 숭고한 유산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느님 곁으로 떠나신 주교님을 위해 기도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교님께서 이뤄 놓으신 우리 교회를 위해 우리의 신앙을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주교님의 앞날에 평화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 김명배 신부(교구 사제단 대표)
“편히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 김영배 신부
저는 2년 반 동안 교구청에서 주교님을 곁에 모시고 있으면서 주교님의 참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교님의 넓고 깊은 속을 이해하지 못하고 속을 썩여 드리는 저희에게 『욕을 많이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일을 많이 한다는 증거야』하시던 주교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견진 때마다 오시어 빠짐없이 하시던 말씀을 저희들은 기억합니다. 『아기를 많이 낳으라』고.
제가 있는 본당에서도 주교님의 말씀에 영향을 많이 받아 자녀를 더 낳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주교님은 참으로 생명을 존중하시는 분이셨고, 성소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신 분이셨습니다.
인간적으로야 좀 더 오래 모시고 마음 편히 오래 사시도록 해드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오늘은 주교님께서 모든 것을 툭툭 털어 버리고 평소 그토록 염원하시던 하느님 나라로 떠나시는 천상 탄생이니 축하드립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 양철화 평협회장(교구 평신도 대표)
“온화한 아버지 같으신 분”
▲ 양철화 평협회장
『우리나라 인구가 1억은 넘어야 한다』며 신자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셨던 주교님. 환한 웃음으로 격려해주시던 주교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교구에 신학교를 건립하시기 위해 국내외로 동분서주 하시던 모습, 그리고 옛날엔 우리 교회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이젠 다른 교회를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시며 외방선교회를 창립하시고 북방선교에 심혈을 기울이시던 주교님의 헌신과 사랑을 저희는 기억합니다.
그 동안 주교님께서 일구어내신 업적을 어떻게 말로 다 열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든 교구민들은 주교님의 유업을 받들어 노력할 것이며, 주교님께서 하느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