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간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인간 생명이 존중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들었거나 혹은 설명해줄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는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도록 창조된 인간은 우주의 임금님과 닮았습니다.…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의 무한한 지혜와 사랑에서 나누어 받은 지혜와 사랑으로 그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라며 “창조주께서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통치자이고 주인이기를 바라신다”고 강조한다.
특히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은 인간 생명의 신성 불가침성에 대한 계시의 핵심적인 내용을 선포한다.
‘살인하지 못한다’고 하는 법은 성경에서도 하느님의 계명으로 제시됐다. 성경에 앞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문헌인 디다케에서는 ‘살인하지 못한다’는 계명을 단정적으로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 계명은 모든 생명들이 한 사회를 이루는 기초다. 아울러 명시적으로 규정된 ‘살인하지 못한다’는 명령은 강력한 부정적 형태를 띤다. 즉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최후의 한계를 가리킨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하느님의 율법이 제시하는 가치들이 이율배반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정당방위와 같은 경우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는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권리와 타인의 생명을 해칠 수 없다는 의무를 실제로 조화시키기가 어렵다. 더구나 정당방위는 타인들의 생명, 가정과 국가의 공동선을 책임진 사람들에겐 권리일 뿐 아니라 막중한 의무이기도 하다. 때문에 불행하게도 침해자가 해를 끼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 때론 그의 생명을 빼앗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사형문제’는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교회 안에서도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가 부과하는 처벌의 첫 목적은 범죄로 야기된 무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처벌의 본질과 범위를 신중하게 평가하고 결정해야 한다. 특히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범죄자로부터 인간의 생명을 방어하고 공공질서와 개인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지 않는 수단들로도 충분하다면 공권력은 그러한 수단들의 한계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한 수단들이 공동선의 구체적인 조건들에 더 잘 부합되며, 인간의 존엄성에 더욱더 적합하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