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필사하면서 삶 따로 신앙 따로가 아니라는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성경은 무엇보다 저의 마음을 늘 하느님께 둘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느님과 친해지도록 도와주는 성경을 어떻게 멀리 둘 수 있겠습니까.”
한용교(베르나르도·73·평택대리구 안중본당)씨는 현재 7번째 성경 필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6월 6번째 신구약 필사본의 마지막 점을 찍었다. 덕분에 지난 10월 열린 교구 성경잔치에서는 2회 이상 필사한 교구민을 대표해 교구장 표창도 받았다.
한씨의 집에 들어서면 성경이 펼쳐진 책상이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 어느 때든 성경을 펼치다보니 자연스럽게 마련된 자리였다.
“성경은 보고 또 봐도 다시 새로운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눈이 안 보이고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 남은 일생 동안에도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필사를 멈추지 않겠다고 하느님께 약속을 드렸습니다.”
한씨가 처음 성경필사를 시작한 것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하며 시작한 필사였다. 특히 성경을 펼칠 때마다 젊은 시절, 한글로 된 성경 한 권 가지지 못하고 어렵게 신앙생활을 이어갔던 기억이 스쳐가곤 했다.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없기도 했고, 그나마 시골 신자들이 가질 수 있는 신앙 관련 서적은 공과책이 유일했던 때였다.
성경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동을 잊지 않고 한씨는 지난 15년 동안 단 한 줄을 쓰더라도 매일 성경을 펼친다. 이제 성경 필사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 지난해에는 직접 인쇄소에 가서 성경필사 종이도 따로 맞춰 사용하고 있다.
한씨는 “성경에는 모든 형태의 삶과 또한 그 삶을 올바로 살아갈 지혜가 담겨 있다”며 “부족한 사람이라 그 지혜를 한 번에 다 길어 올릴 수 없어 반복하고 반복해 읽고 쓰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쓴 것도 아니고 이젠 단지 생활의 일부가 되었을 뿐인데, 교회에서도 칭찬하니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성경 필사를 통해 한씨는 자신의 내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체험했다고 고백한다. 무엇보다 인내심이 생기고,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노력도 할 수 있게 됐다. 또 매순간 성경말씀을 잣대로 판단하는 습관도 들이고 있다. 덕분에 한씨는 “성경은 나를 교육시키는 책이고, 하느님과 친해지는 도구이고, 마음의 양식”이라 자신있게 말한다. 그동안 쓴 필사본뿐 아니라 앞으로 써나갈 필사본은 모두 자녀들에게 물려줄 예정이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남겨주는 것이 최고의 유산이라고 말한다.
“성경을 펼치지 않았다면 매일 성당을 오가면서도 삶의 여정 곳곳에 하느님의 뜻이 있음을 체험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글을 아는 이들은 누구나 기간에 관계없이 조금씩이라도 성경을 필사하면 좋을 듯합니다.”
오늘도 한씨는 “주님,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2사무 3,10)를 모토로, 이번 구절에서 어떠한 지혜를 길어 올려야 할 지 묵상하며 한 줄 한 줄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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