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도원 총본부 건물이 낡아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관계로 저를 포함해서 총본부에서 생활하는 형제들 모두가 꼭 필요한 짐들만 챙겨두고, 나머지는 각자 상자에 담아 창고에 보관해 놓은 채 분원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꼭 필요한 물품들과 몇 달 후 사용해도 되는 짐들을 분류한 후 이삿짐을 싸는 동안 제가 너무 많은 물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수도원에 들어올 때 청빈하게 살겠다며 단출하게 왔는데 그때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이십 몇 년이 지난 지금, 제 방에는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 소중한 그것들이, 만약 제가 죽어 형제들이 제 방 물건들을 정리한다면, 책 말고는 ‘뭐, 이런 것까지 가지고 있었느냐’며 혀를 차면서 저를 대신해 과감하게 버려줄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지금까지 그러한 잡동사니들을 과감히 버리지 못 하는가 했더니 대부분 물건에는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과 맞물려 ‘이 다음에 필요하겠지’하는 생각 때문에 많은 것을 움켜쥐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그렇게 움켜쥔 것들 가운데는 정말 쓸데없는 것들도 있었고, 심지어 유통기한이 벌써 지난 것들도 있어서 혼자 얼굴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의미를 두는 것’과 ‘이 다음에 필요하겠지’하는 생각이 때로는 물질에 대한 집착적 소유를 강화시켜 저도 모르게 ‘코딱지’만한 제 방을 점점 더 비좁게 만들어 결국 제 마음마저 속 좁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두 사람이 쓴 ‘잡동사니의 역습’이라는 책에서 물질의 지배에 빠져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지금 시대에 그러한 물건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면서도 단 한 개도 버릴 줄 모르는, 심리학 용어로 ‘저장 강박’의 저주에 걸린 현대인의 모습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장 강박’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공교롭게도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이들도 많았고, 때로는 돈도 많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도 많았지만, 결국 물건을 바라보는 독특한 심미안을 가져 보통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물건들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고, 해당 물건의 가치와 의미를 확장해가기를 즐긴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 혼자 ‘뜨끔’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소중한 선물을 받고,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필요하겠지’하는 마음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지금 필요한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믿음의 행동적 표현이 아닐까요.
‘다음에 뭔가 필요할 때’, 그분이 그 필요함을 채워줄 것임을 믿는 것, 그리고 ‘다음에 필요할 것들’이 알고 보면 다음에도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믿음은 ‘필요할 것들이라고 생각해서 쥐고 있는 마음을 내려놓는다’라는 또 다른 말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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