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만삼 신부(하느님의 요한·2008년 파견)
▲ 정지용 신부(베드로·2011년 파견)
▲ 표창연 신부(프란치스코·2011년 파견)
최근 한국교회는 해외선교를 향한 보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전체적인 해외선교사 수도 10년 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또한 각 교구마다 피데이 도눔 선교사(Fidei Donum, 믿음의 선물, 교구 사제가 부족한 지역에 사제 파견을 요청하는 교황 비오 12세 회칙)를 파견함으로써 세계 복음화에 기여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해외선교는 민족 간, 나라간, 지역 간 친교를 통해 새로운 형제적 관계를 형성하고 그리스도의 가치를 발견 실현하는 노력으로 의미를 더한다. 한국교회로서도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의 모습을 구현할 뿐 아니라, 보다 성숙한 교회로 나아갈 수 있는 폭넓은 사목적 시야와 경험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특히 수원교구는 지난 2008년 ‘바오로의 해’를 맞아 교구 복음화국 산하에 해외선교부를 설립, 이어 교구 차원의 선교사제 및 평신도 봉사자 파견을 통한 해외 현지인 선교에 보다 체계적인 힘을 싣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교구는 2013년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교구장 중점 사목 방침을 통해 ‘외적 복음화’ 중 해외 선교 사업 또한 강조해왔다.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새해맞이 특별 인터뷰를 통해서도 “교구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있는 우리 교구는 앞으로도 장기적으로 우리 교구가 쌓아온 복음화의 역량을 타교구는 물론 보편교회와 나누는데 더욱 힘써야 한다”며 “아프리카는 물론 특별히 남아메리카와 아시아 등 어렵게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교회에 힘을 불어넣고 형제애를 나누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역설했다.
교구 차원에서 처음으로 피데이 도눔 선교사를 파견한 곳은 아프리카 대륙 남수단(Republic of South Sudan) 룸벡교구(Diocese of Rumbek)가 처음이다. 2008년 3명의 선교사제가 처음 파견한데 이어 지금은 두 번째 피데이 도눔 선교사 3명이 현지에서 사목 중이다.
교구는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케냐 나이로비에도 선교지원센터를 두고, 사제들의 어학연수와 선교 후원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두 명의 예비 피데이 도눔 선교사가 어학연수 중이다. 또 교구 내에서는 관심 사제들의 모임도 운영 중이며, 신학생들은 사목실습 등을 통해 선교의식을 재고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앞으로는 신학생 때부터 더욱 전문적으로 선교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담당 고태훈 부국장 신부는 “해외선교는 물질적 나눔만이 아니라 각국 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데 큰 의미가 있다”며 “이러한 활동을 통해 서로를 더욱 많이 알아가고 서로의 좋은 점을 공유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고 신부는 “교구의 앞으로도 교구 차원의 사목적 의지와 개개인의 원의가 함께 뒷받침되는 해외 복음화의 비전을 세워나갈 계획”이라며 “특히 현지인들을 찾아가는 선교 활동을 위해 평신도 선교사 및 봉사자 양성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여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남수단 피데이 도눔 선교사들은 룸벡교구 내 9개 미션(본당) 중 하나인 아강그리알본당에서 공동사목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물질적 나눔 만이 아닌 수원교구의 사목적 역량을 나누며, 남수단 현지인들의 이웃이자 가족으로 함께 살아간다. 아직 길도 닦이지 않은 숲속과 초원지대를 헤치고 사목방문을 다녀야 하는 여정, 모든 것이 척박하고 부족한 상황이라 생존을 위한 노동을 감내하는 것도 녹록잖은 일상이지만, 지역 복음화를 향한 희망은 이들이 기쁜 마음으로 움직이게 한다.
이 세 명의 선교사제들이 때론 시행착오를 거치고, 때론 기대 이상의 형제애를 체험하는 가운데 길어 올린 선교의식을 통해 피데이 도눔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선교 소명에 대해 환기해본다. 지난해 예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아강그리알미션 현지 콤파운드에서 진행된 나눔에는 한만삼(하느님의 요한, 2008년 파견)?표창연(프란치스코, 2011년 파견)?정지용(베드로, 2011년 파견) 신부가 함께했다. 이들 세 명의 사제들 또한 본질적으로 선교사임을 재차 확인하고, 그 소명을 실현하고자 아프리카 현지인 사목을 자원했다.
주정아(이하 사회) : 룸벡교구에는 교구 사제보다 수도회 사제 수가 훨씬 많은데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이루는 것 또한 해외 선교사제로서의 삶인듯 합니다. 신부님들께서는 파견한 수원교구로서 뿐 아니라 선물을 받은 룸벡교구 차원에서도 첫 피데이 도눔 선교사들이시죠. 특히 한 신부님께서는 1대 파견자라는 면에서 어깨가 더욱 무거우셨을듯 합니다.
한만삼 신부(이하 한 신부) : 파견 당시 전임 교구장이신 최덕기 주교님을 통해서 ‘피데이 도눔’에 대한 설명을 처음 들었습니다. 곧바로 회칙부터 찾아봤죠. 기존에 사제로 살면서도 선교활동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교육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거든요.
하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수원교구 또는 룸벡교구의 본질적인 차이는 느끼지 않습니다. 이곳은 수원교구와 영 다른 곳이 아니라 세계교회 안에서 한 부분일 뿐이니까요. 교구 사제로서 본당 사목에 투신하는 모습 또한 같지요. 다만 힘겹게 신앙을 유지해가는 룸백교구 발전의 거름이 되고자 하는 것이 현재의 소명입니다. 룸벡교구 또한 한국사제가 함께 사목한다는 것에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표창연 신부(이하 표 신부) : 솔직히 피데이 도눔에 대해서는 수단 선교에 관심가지면서 알게 됐답니다. 룸벡교구 내에서도 타국 선교사들을 만나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란 질문을 가장 먼저 받습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질문은 모두 ‘어느 수도회 소속이냐’였어요. 제가 교구 신부라고 응답하면 다들 놀라지요. 피데이 도눔에 대해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데이 도눔 회칙이 나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선교사들에게조차 그 의미가 생소하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수원교구 내에서만 활동하던 모습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됐고, 보편교회에 대한 시각을 넓히면서 피데이 도눔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습니다. 각 지역교회를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피데이 도눔 선교사들이고, 이 활동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켜 주니까요.
정지용 신부(이하 정 신부) : 현재 수원교구 사제가 416명인데 비해 룸벡교구 소속 사제는 저희를 포함해 9명뿐입니다. 그 중 외국인이 아닌 남수단인 사제는 4명뿐이지요. 이러한 현실에서 피데이 도눔 선교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룸벡교구 신자들의 입장에서, 이들 본당과 교구 차원에서 필요한 것을 먼저 고민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데 더욱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다양한 영성으로 선교활동을 펼치는 각 수도회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지요.
사회: 아프리카 선교사제로 살기 위해 꼭 갖춰야할 역량에 대해서도 각자 깊은 고민을 해오셨을 듯 합니다.
정 신부: 무엇보다 ‘열린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선교지에서 쓰일만한 재량을 별로 갖추지 못했었습니다. 달변가도 아니고, 4륜구동에 수동인 자동차 운전이나 산악오토바이 등의 운전을 배운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타본 적도 없었습니다. 선교사로 파견되기 전 실습시간을 거치면서도 과연 내가 이곳 성당에서 공소까지의 길을 찾아다닐 수나 있을까 스스로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곳 현지인들과 더불어 살면서 기능적인 것은 하나하나 배워가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또 실제 배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과 이웃이 되어 살아가기 위해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었습니다.
한 신부: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역량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저는 각종 기계 다루는 법부터 이것저것 많은 것을 배워 이곳에 왔습니다. 물론 여기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기계적인 일을 많이 하고 또 잘한다고 해서 훌륭한 선교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들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이 절감합니다. 썩은 상처의 고름을 닦아내고 그 상처를 안을 수 있는 모든 동기와 힘은 사랑입니다. 간혹 일에 치여 화가 나곤 할 때면 ‘내가 이들을 미워하러 온 것이 아닌데, 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하러 왔는데’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습니다. 선교사제로서의 삶에서는 끈질긴 사랑이 필요합니다.
표 신부: 저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이것은 희망에 대한 인내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성당에서 열심히 미사를 봉헌하고 나온 신자들이 곧바로 마을 추장과 함께 굿을 하러 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름만 신자 뿐인 이들, 신앙인으로서의 성사생활은 너무나 부족한 이들과 마주하면서, 지금 내가 이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이들을 향해 강론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좌절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눈앞의 이익을 보면 신앙고백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는 무기력감도 밀려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곁에서 살아가면서 복음의 씨앗은 죽지 않았음을 또한 실감합니다. 그 씨앗이 나무로 커가고 열매를 맺은 모습은, 척박한 사목환경과 내전 등의 고통에도 유지됐던 지금의 남수단교회입니다.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생활태도를 정화시키지 못한 신자들이 많지만 그들과 함께 변화되는 것이 바로 지금 저에게 주어진 몫입니다.
사회: 이렇게 힘겨운 일상에서는 공동사목이 큰 힘이 될 듯 합니다.
표 신부·정 신부: 매일 공동기도와 미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마치 신학교 생활의 연장선이라고 할 정도로 함께 기도하는 것이 큰 원동력이 됩니다.
한 신부: 크고 작은 사목적 사안들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을 함께 의논하고 나누지요. 좀 더 나은 또한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한 과정입니다.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사제에게도 사제가 필요합니다.
사회: 다소 부족한 점이 있지만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대부분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본을 내세워 시작한 선교의 폐해 혹은 선입견은 차치하고, 솔직히 왜 이들 사이에 들어와 고유의 문화와 풍습을 바꾸면서까지 복음화를 이뤄야 하는가 의문을 가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왜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해야 합니까.
한 신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도 ‘결핍에서 죄가 나온다’고 말씀하신 바 있지요. 물론 이들은 기존에 살던 대로도 잘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수준이 전부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결핍된 채 말입니다. 구원의 은총이 결핍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이들의 그릇된 문화, 예를 들어 동태복수(同態復讐) 등 폭력적인 생활태도는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복음화는 단순히 교회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람의 마음을 채워가는 것이 복음화입니다. 이곳 남수단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깃든 문화가 완성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생활합니다.
정 신부: 저희가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아프리카 지역은 이미 100여년의 선교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의 가치관이나 신앙으로 원주민들을 감동시키기 보다는 물질적인 부분으로 현혹시켰던 모순된 행동을 했던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선교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동안 갖고 있었던 수단인들에 대한 선입견 등이 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우리가 먼저 알게 된 진리를 나누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진리의 좋은 면을 느끼고, 또 우리는 그들이 변화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는 과정입니다.
표 신부: 저는 제 내면에서부터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내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저에게는 기쁜소식이 맞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데 나설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는 한국에서 펼치던 사목방향과는 다른 활동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는 교회안팎에서 정신적 결핍을 채우도록 돕는데 더욱 힘을 쓰곤 하지요. 남수단인들에게는 실제 물질적인 부족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그러한 이들에게 ‘복음’이 과연 ‘복음’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복음을 더욱 새롭게 보고, 구약의 시간을 새롭게 체험하는 기회를 만나고 있습니다.
사회: 아프리카와 비교해서는 풍요로운 교구에서 양성됐고 또 사목활동을 펼친 경험을 바탕으로 룸벡교구와 나누고 싶은 사목적 인프라도 많을 듯 합니다.
표 신부: 무엇보다 수원교구의 성소 양성 의지를 이곳에 전하고 싶습니다. 룸벡교구는 아직 성소 못자리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사제 양성이 최우선 과제 중 하나지요. 오랜 기간 성소자 양성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현해온 수원교구의 의식과 역량이 이곳에 전달된다면, 보다 많은 영적 자원을 나눌 수 있는 물꼬가 트일 것입니다.
한 신부: 네, 지금 남수단교회가 자립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톨릭정신을 갖춘 리더들을 많이 양성해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무엇보다 현지인 사제 양성을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사회: 보다 폭넓은 복음화를 실현하기 위해 남수단교회와의 연대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 신부: 저희가 이곳에 파견됨으로써 수원교구민들도 룸벡교구 신자들을 알게 되었지요. 살아가면서 한 번도 이름을 듣지 못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서로가 안다는 것은 친교의 시작입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다가가 손을 내밀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직접 마주하고 손을 잡는 체험만으로도 자연스러운 연대가 시작됩니다. 관심은 사랑의 시작입니다.
남수단인들에게 한국은 이미 매우 특별한 나라이고, 한국 신자들은 특별한 형제들입니다.
표 신부: 남수단교회 안에서 이곳 형제자매들과 함께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평신도 봉사자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복음화는 서로가 만나고 함께 생활하고 또 서로를 통해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이곳 신자들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한국인 평신도 봉사자들이 전문적인 활동을 펼치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생활태도를 되돌아보고 문제점도 발견합니다. 이들의 생활문화 안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평신도들이 선교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길 기대합니다.
한 신부: 남수단 현지의 가난은 한국에서의 가난과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문간에 쓰러져 있는 라자로가 겪는 것처럼 극단적인 가난의 삶입니다. 그렇다고 불쌍하니까 한 번 도와주자 하는 식의 동정은 연대가 아닙니다. 가난한 이로만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인간으로 친구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먼저 필요합니다. 룸벡교구는 수원교구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호칭만이 아니라 삶의 연대와 나눔으로 실제 느낄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