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루 죽음의 그늘 속을 거닐어야만 하는 사형수들에게도 성탄의 빛이 전해졌다.
예수 성탄 대축일을 앞둔 12월 23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무거운 정적만이 짓누르고 있는 수용시설 한 켠에서 간간이 청명한 웃음소리가 전해져왔다. 웃음의 주인공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마련한 성탄 미사에 함께한 사형수들과 봉사자들.
빨간색 수번을 가슴에 단 사형수들은 성탄을 앞두고 자신들을 찾아온 이들이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한껏 고무된 모습이었다.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서서울지역 교구장대리) 주례로 봉헌된 미사. 일반인들과 다른 옷을 입었을 뿐 사형수들도 한 입으로 같은 하느님을 고백하고 사랑을 노래했다.
조규만 주교는 이날 미사에서 “우리 가운데는 무지, 잔인, 비겁, 선함 등이 뒤섞여 있다”면서 “다시 오시는 주님께서 뒤범벅된 것들 가운데서 선과 악을 확실히 구별하실 것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성탄 축제를 통해 들려주시는 기쁜 소식”이라고 역설했다. 조 주교는 또 “하느님과 자신이 어떤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며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는 마음의 언어”라며 주님과의 진실된 대화를 당부했다.
신자 사형수들은 봉사자, 교정 관계자 등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자신들과 같은 사형수의 모습으로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축하했다. 특히 이날 미사 중에는 사형수 신분이면서도 모범적으로 신앙을 갈고 닦아온 도 토마스씨가 견진성사를 받아 기쁨을 더했다.
봉사자들의 방문 소식에 오래 전부터 설렜다는 정 프란치스코씨는 “이런 자리에 초대받을 자격이 있는가 생각하게 되지만, 가장 낮고 하찮은 자리에 있는 이부터 초대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린다”면서 “천주교 신앙을 빛낼 수 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미사 후 40여 명의 참가자들은 봉사자들이 준비해간 음식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영육간 건강을 기원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사형수들의 힘 실린 성가가 오래도록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카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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