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옷을 벗었더니 군고구마 장수는 검은 수단을 입은 채다. 매일 아침, 이렇게 군고구마를 파는 이는 ‘신학생’이다. 강헌(세례자요한·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1학년) 신학생. 그의 따뜻한 군고구마 기계가 장작을 태우며 노릇노릇 고구마를 굽기 시작했다.
▧ 고구마 한 쪽
그가 성당 마당에서 고구마를 굽기 시작한 것은 12월 3일부터였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도매시장에 들러 ‘좋은 고구마’를 고른다. 고구마 단가가 비싸지자 장이 파할 무렵 ‘떨이’로 파는 고구마를 사는 요령도 생겼다.
일주일에 파는 고구마 양만 10kg짜리 20상자다. 교우들이 비교적 많은 주일에는 하루종일 군고구마 기계를 돌린다.
강헌 신학생이 시작한 군고구마 장사는 초기 자본금 100만 원을 빌려주며 권유한 본당 주임 현정수 신부의 아이디어가 발단이 됐다. 군고구마를 판 수익금으로 본당 어르신들을 모시고 스키장을 가보자는 것이 이 ‘즐거운 장사’의 목적이다.
생전 험한 일 한 번 해보지 않았던 신학생에게 군고구마 장사는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군고구마를 좀 안다’하는 본당 신자들은 모두 모여 시운전을 하고, 신학생과 함께 굽는 요령을 터득해갔다. 고구마를 넣다 손목을 데여 물집이 잡힌 적도 여러 번, 공사현장에 소장으로 일하는 신자와 본당 관리장, 시설분과장이 합심해 ‘마른 장작’을 구해주기도 했다.
“시상에, 우리 학사님. 겨울인데 모자라도 쓰고 장사하셔. 귀가 다 빨개.”
성당을 오가는 할머니들에게 군고구마 장수 신학생은 ‘기특하고도 고마운 존재’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스키장을 가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군고구마를 파니 고마울 수밖에 없다.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할머니들이 신학생에게도 큰 힘이다.
“사제가 돼 사목하며 부딪치는 문제들을 조금씩 맛보게 해주시려고 신부님께서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며 저는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고, 힘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신자들은 미사 후 군고구마를 먹을 수 있고, 신학생은 군고구마를 통해 마음을 다지고 교우들과 친해졌다. 주임 신부의 예상은 적중했다. 군고구마 판매 수익금 또한 100만 원이라는 손익분기점을 넘어 어르신들을 위한 기금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2월 1일, 이들은 스키장으로 떠난다. 120명 모집에 벌써 77명의 어르신이 접수를 마쳤다.
▧ 고구마 두 쪽
“아이고, 추워라.”
미사가 끝나고 옷깃을 단단히 여민 신자들이 성당 마당으로 쏟아져 나온다. 군고구마를 사는 이도 있고, 뜨끈한 군고구마통에 언 손을 녹이는 이도 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신학생과 군고구마 주변은 어느새 신자들로 둘러싸여 작은 사랑방이 됐다.
“작은 것은 3개에 2000원, 큰 것은 1개에 1000원이에요. 하나, 둘, 셋. 할머니, 어쩌죠? 오늘 군고구마 다 팔렸어요.”
미사시간 내내 노릇하게 구워놓은 군고구마가 금세 동이 났다. 주일에 군고구마는 더욱 모자라 인근 성당에서 빌려온 군고구마 기계까지 2개를 돌리기도 한다. 아쉬워하는 신자들의 발걸음을 뒤로 하고 강헌 신학생이 군고구마 기계 옆을 지킨다.
장작불이 마저 꺼지고 연기가 홈통을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덕분에 성당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마지막 신자까지 만나 인사를 건넬 수 있다.
“안녕히 가세요.”
그가 아직 김이 나는 작은 군고구마 하나를 건넸다. 반으로 나누니 노릇한 속을 드러내며 두 쪽으로 갈라졌다. 가장 추웠던 겨울, 나눠먹는 군고구마 하나가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 모금함에는 100만 원 손익분기점을 넘어 어르신들을 위한 기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 고구마를 굽기 위해 꼭 필요한 장작. 여러 신자들이 합심해 마른 장작을 구해주기도 했다.
▲ 장작을 태우며 노릇노릇 고구마를 구워내는 군고구마 기계. 본당 신자들이 모여 시운전을 하며 요령을 터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