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매우 특별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분의 탄생을 미리 예견했던 예지, 그분을 뵙기 위해서 단호히 길을 나서는 결단력, 마침내 그 꿈을 이루어낸 동방박사들의 인간승리 이야기에 살풋, 기가 죽습니다.
이렇게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그분을 뵙는 일이 죄송합니다. 수시로 틀어지고 달라지고 꼬꾸라지는 허약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은 꼴도 성에 차지 않습니다. 동방박사들처럼 그분께 폼나는 ‘보물 상자’를 바치며 사랑과 정성을 한껏 표현해 드리지 못하니, 속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분께 경배를 드린 사람이 동방박사만이 아니라 추운 밤,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던 가난한 목자도 있었다는 사실을 들려줍니다(루카 2,16-20 참조). 세상에 내세울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 오직 성실함과 충실함으로 삶을 견디던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훨씬 놀라운 방법으로 그분을 뵙는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동방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기 예수님께 바칠 수 없다 해도 찬양과 찬미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는 귀띔이라 싶습니다.
그날, 하늘의 별이 사라져서 박사들의 발길을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했던 것은 사악한 헤로데 임금에게도 말씀으로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배제시키지 않겠다는 주님의 뚜렷한 의지표명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렇기에 그분이 오신다는 사실을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극성스럽게 알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득권에 집착하여 잔인하고 포악하게 학살을 감행했던 헤로데의 끔찍한 모습이 딱합니다.
참 진리를 향한 영혼의 갈증없이 그분의 예언을 알아낸들, 그분의 뜻을 속속들이 공부한들 전혀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라 헤아립니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자신의 것만 지키려 골몰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신앙이라면, 끝내는 왕이신 주님을 내 삶 밖으로 밀어내는 어리석음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라 듣습니다. 혼자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는 좁아터진 마음가짐 안에는 너그럽고 자애로운 그분의 은총이 자리할 수 없다는 의미로 새깁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여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 자신의 영화만을 추구하려고 이웃을 무너뜨리려 든다면 임마누엘 은총은 결코 누릴 수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분을 뵙고 그분을 찬미하는 일에서 제외되는 대상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의 누구도 찾아오신 그분을 맞아들이는 일에 차별당하지 않습니다. 그날, 외양간 구유에 계신 그분을 뵙는 특권이 귀한 예물을 준비한 동방박사들에게만이 아니라 들판에서 밤을 새던 가난한 목자들에게도 똑같이 임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법입니다.
세상에 오신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우리 모두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주님이십니다. 임마누엘은 “우리 모두의 주님”이심을 밝히신 그분의 마음입니다. 나와 네가 ‘우리’ 되는 바로 그 자리에 함께 하실것이라는 그분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쏙 빼 놓은 채 “함께 계신다”는 부분만 골라 듣는 경향이 진합니다. 그분께서 ‘나’에게만 계신 것으로 오해하고 나하고만 계셔주실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이 졸렬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는 우리네 심중을 백번, 헤아리셨던 것일까요? 그분께서는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너무나 분명하게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무엇이든 “우리에게” 주실 것을 청하라 이르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서 함께 용서를 청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분의 은총과 섭리로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에게는 아직 주님을 모르는 더 많은 ‘우리’를 그분께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하고 희생하라는 그분의 사명이 있습니다. 앞서 예수님을 믿었기에 누리고 있는 이 좋은 것, 이 기쁜 것, 이 감사한 것들을 온 세상에 전해야하는 소리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을 체험한대로 전했던 목자들처럼 그분의 복음을 전하는 은총 배달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뵈온 오늘, 그분의 축복을 쪼개고 가로채려고 치사를 떠는 우리가 아니라 그분 닮은 큰 사랑을 탐하여 배워 익히게 되면 좋겠습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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