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탄절을 앞두고 아기예수가 탄생하실 마구간을 짓기 위해 소재를 구하러 뒷산에 올랐다. 혹독한 추위라더니 바로 이런 매서운 날씨를 일컫는 말이겠지! 이리저리 둘러보며 자연스레 늘어진 나뭇가지를 자르고 솔방울과 까치밥, 맹감열매 등 한 아름 안고서도 뭔가 부족한 듯 다른 소재에 눈독 들이다 그만 돌멩이를 헛디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어찌나 그 소리가 크던지 놀라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려보고 팔다리를 흔들어보니 멀쩡한 것이 아닌가! 기적이 따로 없었다. ‘당신 집 지어드린다고 봐 주셨나요?’ 피식 웃으며 얼기설기 마구간을 엮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군종교구 담당기자입니다.” 이크! 뭔가? 거절 잘 못하는 나는 내심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꼭 들어주길 바라면서 문을 두드렸을 것이기에…. 임박한 원고 마감시한에도 불구하고 선뜻 대답하고 나니 막연했지만, 특수소임지인 이곳에서 젊은이들과의 일상을 나누면 되겠지 싶었다.
국군함평병원에 2009년 2월 17일 부임했으니 어느덧 3년이 다 됐다. 시간이 참 빠르다. 얼마 안 있으면 정든 이곳을 떠나 다른 소임지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국군함평병원에는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젊은이들이 자원입대해 장기복무를 하거나 병역법에 의해 소집돼 단기복무하는 군인들이 특수한 조건에 적응해 가며 임무를 수행하던 중 다치거나 병이 나면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치료와 회복을 위해 입원한다. 또한 그들을 치료하기 위한 군의관, 간호장교, 지휘부, 기간병과 군무원들이 상주하며 가까운 부대 군인들의 건강 검진과 입영자 신검이 이뤄지는 곳이기도 해서 매일 군복 입은 이들과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로 북적거린다.
아침마다 위병소를 지날 때면 입구에 아직 앳된 초병들이 총을 메고 무표정하고 근엄한 얼굴로 ‘충성’을 외친다. 병원 안에 들어서면, 짝지어 순회하는 병사, 곳곳에 총 멘 초병들, 환자복에 깁스하고 걷는 환자병, 휠체어를 굴리며 운동하는 환자병 등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곳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온통 다른 세상이 된다.
군종교구의 요청으로 뜻밖의 소임지에서 젊은이들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허허벌판에 병원만 덩그러니 서 있는 이곳에 30분을 달려 출퇴근해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다. 오는지 가는지 묻는 사람도, 식사 시간이 돼도 밥 먹으러 오라는 사람이 없다. 성당에 앉아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향해 ‘왜 이 빈들에 나를 꼬드겨 세우셨소?’ 하며 하소연도 해 봤다.
누가 신자인지도 알 수 없고 표정 없는 군인들만 오가니 겁도 났다. 누굴 잡고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 무던히도 주님께 따지고 대들었다. ‘당신이 여기 저를 데려다 놓았으니 목적이 있을 거 아닙니까? 지금부터 당신이 저를 통해서 하고 싶으신 일 알아서 하세요.’ 볼멘소리로 내뱉었지만 그분의 침묵은 사막의 적막감만 안겨줄 뿐이었다.
사막은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장소라 했던가! 그 순간, 오랜 세월 성교회의 울 안에서 보호받으며 편하게 살아왔음에 감사드렸다. 주인 없이 먼지투성이 속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인내하셨을 예수님의 외로움이 내 맘에 드리워졌다. 죄송함과 감사함이 뒤범벅돼 수그리고 있을 즈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기쁨과 평화를 가득 안으신 채 불타는 사랑과 역동적인 힘으로 내게 다가오셨다.
군복음화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