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중대한 비윤리적 행위다. 실제 자살은 자기애의 거부를 드러내며, 이웃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들 또한 전체 사회를 향한 정의와 자비 의무의 포기를 의미한다. 무엇보다 생명과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을 거부하는 모습으로서 문제점을 보인다.
이른바 ‘자살 방조’는 스스로를 살인 가해자로 만드는 것과 같다. 자살 방조는 비록 요청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불의한 일에 협조하는 행위다. 이 문제와 관련해 성 아우구스티노는 “타인을 죽이는 것은 결코 합법적인 일일 수 없습니다. 비록 그 사람이 삶과 죽음 사이에 매달려서, 육체의 구속을 끊기 위해 애쓰면서 풀려나기를 바라는 영혼을 자유롭게 해줄 것을 애원하여 죽기를 원하고, 실제로 그런 요청을 했을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자가 더 이상 살 수가 없는 경우에도 결코 합법적인 일일 수 없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은 특히 안락사는 그릇된 자비, 자비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라고 역설한다.
참된 자비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도록 이끈다. 자비는 타인의 고통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생명의 복음은 “의사들이나 입법자들과 같은 몇몇 사람들이 누구는 살아야 하고 누구는 죽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억지를 부리게 될 때, 그 방자함과 불의함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상황은 ‘에덴에서의 유혹’과도 같다. 그 유혹이란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유혹이다. 생명의 복음은 “인간이 어리석고 이기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이 권능을 침해하게 되면, 그는 불가피하게 이 권능을 불의와 죽음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약한 사람의 생명은 강한 사람의 손에 맡겨지게 되고, 사회에는 정의감이 상실되며, 모든 참된 인간 상호간의 관계의 뿌리인 신뢰심이 흔들리게 된다”고 강조한다.
이어 생명의 복음은 “고통은 그 자체로는 여전히 악이고 시험이긴 하지만, 언제나 선의 원천이 될 수 있다”며 “사랑을 위해 또한 나눔을 통한 사랑을 갖고, 하느님의 은혜로운 선물과 자유로운 선택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고통 안에서 고통을 체험할 때, 고통은 선이 된다”고 반복한다. 아울러 주님 안에서 자신의 고통을 겪어내는 사람은 더욱 완전히 주님과 하나가 되며, 교회와 인류를 위한 구속사업에 더욱 긴밀하게 협조하게 된다.
생명살림 윤리백신 (11) 생명의 복음 (11)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유혹
발행일2012-01-15 [제2779호, 18면]